온몸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마음먹는 것
예수님은 오늘 자극적인 표현들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표현은, 자칫 우리가 생각하는 죄의 범위를 더욱 넓히며, 괴롭게 만드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실질적인 행동으로 간음을 저질러야만 간음을 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음욕을 품고 상대를 바라보는 것 역시 간음이라고 강력히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이분이 돌로 쳐 죽임 당할 뻔했던 간음한 여자를 용서하며 보내준, 그 예수님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형제를 살인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형제에게 성을 내어서 원망을 사는 것 역시 죄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은, 우리들을 더 옥죄고, 죄의식을 키워주어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였을까요?
뽑아 던져버려라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다소 충격적인 표현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지체가 죄를 짓게 한다면, 그것을 뽑아 던져서라도, 멸망하는 길에서부터 스스로를 지키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환자의 지체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점점 썩어가며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에는, 치료의 일환으로 지체를 절단하기도 합니다. 자극적인 예수님의 표현은, 사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디에 우리의 생명이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러한 표현은, 실제로 우리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라는 말씀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뽑아 던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의 행동은 마음이라는 텃밭에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문득,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마음에 심은 대로 자라나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친절한 행동에도, 불순한 씨앗이 심겨 자라났다면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같은 행동이라도, 그 사람의 의도에 따라 매번 다르게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잘못된 행동의 뿌리, 즉 마음속 심긴 불순한 씨앗이, 우리가 뽑아서 던져버려야 할 대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보아야 하는 것
예수님의 말씀도 겉만 바라본다면, 죄에 대한 개념을 더욱 심오하고 어렵게만 만드는 족쇄처럼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온전한 의도는, 죄를 짓지 않고자 행동 자체에 집중해왔던 우리에게, 그 뿌리가 있는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죄의 지체가 아닌 본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체란 그 지체에게 명령을 내리는, 다시 말해, 지체의 근원이 되는 곳을 의미할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생명은 지체가 아닌 본체에 있습니다. 죄가 자라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 지체가 아닌 본체를 마주하고 뽑아야 합니다.
거꾸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우리의 지체가 아닌 본체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 존재의 본체는 우리의 탐욕과 분노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살아가면서 커져간 탐욕과 분노를, 본인과 동일시 여기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발달된 내면의 지체는 우리들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한 착각에 사로잡혀, 언젠간 다듬어져야 할 건강하지 않은 우리의 마음속 지체를, 우리의 본질이며 정체성으로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께서는 강한 어조로 구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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