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9.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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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분노

누구나 재판에 넘겨진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 속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깨닫게 도와줍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진정한 화해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해야만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평소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의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의로움, 형식을 우선시하는 그들의 의로움을 지적하고는 하셨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미루어보아, 예수님은 겉에서부터 시작되는 의로움이 아닌,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의로움을 강조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계명에서 언급된 살인과, 형제와의 다툼을 비교하며, 내면의 의로움을 설명해주시는 듯합니다. 살인과 다툼에는 물론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의 내면에는 모두,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과 분노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예수님은 이를 짚으시며, 우리의 의로움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짚어주십니다.

형제와 화해하다


하지만 늘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훌륭한 인물들도, 형제들과 다툰 적은 있었지요. 따라서 우리는 다툼 이후, 화해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과 화해는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상대가 아직 나에 대한 원망을 지니고 있다면, 적절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겠지요. 자신만의 의로움을 위해, 화해를 시도한다면 당연히 그 화해는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진심이 담긴 화해, 진정한 화해는 상대를 정말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시작될 수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 한 닢까지


형제의 원망을 풀지 못하고, 화해하지 않은 사람은 재판을 통해, 감옥에 갇혀 마지막 한 닢을 갚을 때까지 나올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이 구절을 곱씹다가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해하지 못한 우리가 갚아야 할,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은 무엇일까?

화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외면한 것과도 같습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 즉 형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자신과 동등한 존재, 즉 자신의 형제를 외면하고 미워하다 보면, 그 외면과 미움은 결국 스스로를 향해,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를 향해, 전가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화해는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개념을 넘어, 스스로의 존재, 그리고 하느님의 존재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