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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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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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순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오늘과 내일, 그리고 걱정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다른 것을 동시에 섬길 수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둘을 섬기다가도 결국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따르게 되어있음을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흔히 예수님과 재물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마음 안에는 풍요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이 내재되어있기에, 더욱 그 혼란을 자주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물과 하느님은 엄연히 다른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자신이 섬기는 대상을 따라가고 선택하게 되어있지요.

오늘과 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오늘을, 내일을 위해 살아갑니다.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는 것이지만, 오늘을 내일을 위한 수단만으로 여길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축적된 오늘의 가치는, 또 다른 내일로 넘어가게 됩니다. 어쩌면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렇게 축적된 수많은 오늘들을 한 번에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소중함은 내일이 있기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늘이라는 시간으로 인해 허락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재물에서 하느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있기에 재물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재물을 쌓는 이유


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줄이고, 안정감을 찾고자 재물을 쌓으려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때로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삶을 불행한 삶이라 생각하며,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지요. 이처럼 누군가의 미래, 즉 누군가의 생존이 그 사람의 재산으로 인해 얼마나 오랫동안 보장되는가는,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념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고된 하루를 보내며 재물을 쌓고자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재물에 집착하는 행위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소중함을 해친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연의 다른 생물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늘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더 먼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며,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을 현명함이라고 생각하며 발달시켜왔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축적 가능해진 재산들이 늘어날수록, 하느님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함께 커져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재산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재산을 늘리는 것에 몰두하며, 우리의 생명을 재산 중축을 위해 소모하는 삶의 형태가 굳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


사실, 지나친 미래에 대한 걱정은 부족함 믿음 때문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한 번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어찌 보면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하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한다고 재물이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재물을 주인으로 선택한다면, 하느님의 모습은 점차 흐려지겠지요. 하느님은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시며, 또 그것을 때에 맞게 주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재물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그 재물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생존을 위하여


예수님은 무엇을 입을지, 또 무엇을 먹고 마실 지를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걱정은 기초적인 생존을 위한 걱정이지요. 우리는 흔히 소중한 것들을 제쳐두고, 힘들게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러한 말을 듣게 됩니다. "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생존이 보장되어야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왔지만, 삶이 다할 때까지 생존에만 급급해하며 살아가다가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존이라 말하면서, 정작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존의 기준을 늘려갑니다. 생존이 유일한 목적인 여타 생물들과는 달리, 우리는 하느님과 더욱 깊이 교류하며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생존 자체보다 하느님과의 교류를 통한 성장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이 아닌, 하루하루를 기쁘고 소중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먼저 찾는다면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먼저 찾는다면,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모든 활동을 정지하고, 방구석에서 하느님을 외치며 기도만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힘들고 고된 하루가, 내일의 안정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고된 하루들의 연속인 쳇바퀴에 갇혀버릴 것입니다. 오늘의 삶의 방향을,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두기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들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에게 둔다면, 우리의 고생은 분명 오늘의 기쁨과 보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