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안에 담긴 진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3. 2. 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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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액체
병 속에 담긴 하얀 액체

사흘 만에 다시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 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예수님이 보셨던 것


 복음 속 예수님의 모습에서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특이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다는 점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이지요. 우리가 당시의 예수님을 직접 만나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특별함은 예수님의 신성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행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좋아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큰 성취감과 영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갈릴래아를 지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애착이, 예수님이라는 존재 자체를 향하는 것이 아닌, 그분에게 바라는 무언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애착은 쉽게 분노와 미움으로 변질된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지요.

 

뒤에 나타나는 진짜모습


 예수님이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던 것은 신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보이는 것에 치우쳐지지 않고, 지금 당장의 모습에만 매몰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발생하고 이루어질 최종적인 무언가를 바라보는 관찰력으로 그러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당장의 모습보다 뒤에 드러날 무언가를 보실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대상의 진짜 모습은 뒤에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고래상어'와 '군 병원'과 같은 합성어에도 진짜 그 대상의 정체성은 뒤에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들어오던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같은 결과이지만, 지금 당장의 풍요를 더 큰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가치를 혼돈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우리 역시 당장의 모습만으로 상황을 판단하며 그릇된 방향의 길을 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온전히 알게 된 사람은, 순간의 모습과 감정에 치우쳐지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탐스러운 열매라도, 그 안에 우리를 죽이는 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 열매를 먹지 않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 우리를 해치려는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간의 모습만으로 그 대상의 전부를 판단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바라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하였을 때, 제자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려워 그 누구도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죽음 후에 찾아올 "부활"이 아닌, "죽음"에만 집중했을지도 모릅니다. 죽음 이후의 부활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뒤이어 어린아이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이 순간 마주하는 어린아이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려면 그 안에 담긴 진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바로 죽음에서 부활을 볼 수 있듯, 순간의 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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