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예수님을 팔아넘기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3. 4. 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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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불행으로 이어지는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 봅니다.

 

복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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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선택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유다의 그러한 선택의 이유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되며 여러 가지 추측들을 만들어내었지요. 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한 가지의 이유로 귀결되는 듯합니다. 바로 "실제로 그러하지는 않지만 당시 자신이 판단하기에 이로운 방향"을 선택했던 "어리석은 이기심"였을 테지요.

 

 모든 생물은 이기적인 방향으로 선택을 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어리석은 이기심"의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어리석은 이기심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어리석은 이기심'을 경험합니다. 아이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들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있으며, 당장의 쾌락을 선택하고 나중에 후회하며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옳았다고 믿었던 굳은 신념이 결국에는 자신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원인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이기심'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참된 행복을 향한 길을 걷는 것이며,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는 것은, 참된 행복의 길을 순간의 기쁨과 맞바꾸어 버리는 선택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유다의 선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이 경제적 이득을 위한 선택이었든 자신의 야망을 위한 선택이었든 아니면 대의라고 생각한 자신의 신념을 위한 선택이었든, 당시에는 스스로에게 이로움이 된다고 생각한 선택이었을 테지만, 결국 그 선택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일깨움


 예수님은 그러한 유다의 선택이 정말로 현명하고도 진실된 선택인지를 일깨워주기 위해, 유다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의 말로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가리게 되지요. "너희 가운데 누군가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협박이나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처럼 진실을 보지 못하고 나약하게 무너질 그들의 현상태를 알려주는 말씀이었을지도 모르지요.

 

 진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환상이 깨지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깨짐을 우리는 불행이라 이름붙이 기도 하지요. 예수님은 우리의 환상을 큰 고통과 괴로움이 되기 전에 깨부수어주시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손길을 무시한 채, 그 환상을 더 확고히 다져갈 때가 많습니다.

 

또다시 유다가 선택한 것


 만약 스스로를 심판하고 처단하려 하던 유다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였다면 어떠했을까요? 자신이 그토록 나쁜 사람이었음을 각인하기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자신을 내치지 않았다는 사랑으로 시선을 돌렸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일깨움은 우리를 어둠이 아닌 빛으로, 거짓이 아닌 진실로 이끌어줍니다. 이러한 방향은 우리의 참된 행복과 불행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진실과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거짓과 어둠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놓이게 됩니다. 환상이 깨지고 진실을 마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진실에 두려 한다면, 자신의 존재는 망가질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고 덮으려 할 때 괴로워지는 것이지, 막상 진실이 드러나고 진실을 받아들일 때는 괴롭지 않습니다.

 

 

참 행복과 불행


 참 행복과 불행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순간의 편안함과 이익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과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는 표현은 꽤나 부담스럽게 다가오지만, 이는 거창하게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바치느냐 마느냐의 차원으로만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선택들이 정말로 진실되게 우리의 행복을 위한 선택인지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다가 불행해졌던 것은 단순히 "배신"하였기 때문 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할 때도 "본인만의 판단"에만 머물러서 결정하였으며,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았을 때도 "본인만의 판단"에만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우리의 판단은 한시적인 정보에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순간적인 판단만으로는 진실에 가까워지기 어렵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우리가 자꾸만 순간에 머무르는 선택을 한다면, 영원한 존재로 나아가는 여정은 우리의 몫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 자신의 발이 아닌,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고 가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참된 행복을 향한 여정에서 기쁨과 영광, 그리고 부활로 참 행복과 생명을 미리 보여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걸어 나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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