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1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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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하늘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오늘 독서 말씀 구절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이 구절을 읽으며, 지극히 높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또한 독서 전문을 읽으며,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는 무엇일지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지극히 높으신 분


 독서에서는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극히라는 말 안에는, "모든 것의 위에 계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보다 위에 있음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 위에 계심을 고백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모든 것에 위에 계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그 무엇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음을 믿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주관 안에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된다면, 하느님을 향한 찬미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어떠한 존재가 해결해 주었을 때, 그리고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오던 무언가를 가능하게 해 주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향해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되는 듯합니다.

 찬미는 누군가의 강요와, 어떠한 의무감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존재의 위대함을 직접 느꼈을 때 나오는 자발적인 감사와 감탄이 바로 찬미입니다.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심을 직접 느낀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찬미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입니다.

 

복을 받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 그리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시기도 하지요.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이, 하느님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할 때, 우리의 마음은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착한 일을 했기에 상을 주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복,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지금 이 순간 모두, 하느님에게서 나왔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복을 깨닫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복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게 없던 것을 받게 되는 순간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것들을 알아차리는 순간을 의미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주체가 하느님임을 깨닫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며, 세상의 존재 방식을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복 받은 사람은 아닐까요?

 

십 분의 일을 주다


 아브람은 하느님의 사제인 멜키체덱에게 자신이 받은 복의 십 분의 일을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서도 신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교회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이러한 행위는 의무감과 강요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봉헌은 자신이 받은 기쁨의 일부를 사람 나누는 축제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뒤틀린 종교적 의무감으로 인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위선으로 인해, 봉헌 혹은 십일조가 부자연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의무적으로 지내거나, 불순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축제에서는 온전한 기쁨을 나눌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의무적으로 내놓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하느님을 통해 받게 된 모든 것들을 발견하고 조금씩 나누는 것에서 기쁨을 찾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그 복은 나눔을 통해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재능, 웃음, 사랑, 깨우침, 아픔, 눈물, 그리고 모든 경험들은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신 우리의 복입니다.  그것들을 함께 나누면서, 하느님을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다면, 그 역시 또 하나의 행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