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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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장미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


 오늘 복음 말씀 구절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분을 따른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말에 걸맞게, 하느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무엇일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생명의 말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생명과 성장이 아닌, 멸망과 파괴의 말을 전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말을 전한다는 것은, 항상 예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것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된 달콤한 말보다, 진실을 보게 하는 쓴소리가 상대방의 생명과 성장에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생명의 말, 즉 듣는 이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말은,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스스로를 진심으로 대하다


 타인에게 생명의 말을 건네는 것이 중요한 만큼, 스스로에게도 생명의 말을 들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과도하게 얽매어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오랫동안 외면해오던 현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 생명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일 것입니다.

 

 만약 이웃에게 생명의 말을 건네는 것이 어렵다면,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사랑해주려 한다면, 외면당한 자신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불만이 자연스럽게 자라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생명의 말을 건네기 전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미운 마음이 드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스스로를 받아주고 일으켜주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진심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장


 우리는 모두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분명한 삶에서, 생명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는 성령의 손길을 느낍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생명을 구한 사람은,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고 싶어 합니다. 늪에서 구조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구하신 성령의 손길, 즉 우리가 들은 생명의 말을 이웃에게 전하며,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과 불안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생명의 말을 건네지 못합니다. 늪에 함께 빠져 있는 사람은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없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따라서 생명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는 상태여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하느님의 자녀만이, 생명의 말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받은 그는, 스스로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삶을 닮으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남들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과 욕구, 기쁨과 만족을 모두 억누르고, 타인의 성장에만 초점을 두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닐 것입니다.

 

 독서 마지막 부분에는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 '희생하십시오, 봉사하십시오'가 아닌,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입니다. 어떤 작가는, 삶에서 거슬리고 미워지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저 사람이 나의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어떨까?'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바라본 그 사람은, 여전히 같은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전과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그 작가는 타인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로 택하였습니다.

 

 미움과 사랑은 분명,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행동을 했기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했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지요.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신을, 그리고 이웃을 바라보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조금은 어려울지라도, 분명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생명의 말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상대방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첫 발걸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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