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6. 2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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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쟁기

어디로 가시든지


 오늘 복음 말씀 구절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선택한 사람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모든 일은 선택으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갈 때가 차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자 마음먹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구원과 희생의 제사는, 그렇게 예수님의 선택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어떠한 길인지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무엇을 위한 길이며, 무엇을 해야 할 길인지를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길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고난을 겪을지를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걸을 길이, 남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수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한때는 자신이 행한 기적과 치유로 자신을 떠받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손가락질하며 자신을 모함하고, 또 죽이려 하는 것도 함께 받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아직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한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태도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었을 것입니다.

 

선택을 존중하다


 예수님을 거부하며 적대시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제자들은 마을을 불살라버리기를 바라시냐며, 그 분노와 반감을 표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을 사람들의 선택에 불만을 품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태도에 불만을 품으며, 마을 사람들을 처단하려는 제자들을 꾸짖으시지요.

 

 예수님이 구원과 희생의 길을 선택한 것은, 환영과 지지를 바라기에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길이, 자신이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라고 믿었기에, 그 길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선택"이라는 권한은 자신의 길 위에서만 해당되어야 함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마음먹은 동네 사람들도, 자신의 입장에서 각자의 선택을 한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에게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이 가야 할 길만을 바라보며 걸으실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복음 속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길을 걷다가 만난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마음먹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이 걸으시는 길을 함께 걷고자,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던 사람은 주님을 따르기 전,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치를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그들에게 건넵니다.

 

 이 말씀은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만 신경 쓰는 냉혈한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들을 버려야 한다는 말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선택이 어디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영역을 분명히 구별해주십니다. 선택은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길을 정하는 것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선택이라는 열쇠


 예수님은 사랑과 희생으로 구원의 문을 여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구원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각자의 선택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선택'이라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 열쇠는 오직 자신 앞에 놓인 문만을 열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열쇠로 타인의 문을 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에 신경 씁니다. 우리는 우리 몫을 넘어, 타인의 선택권마저 넘보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열쇠로는 열리지 않을 문 앞에 서성이며, 많은 시간들을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각자의 선택은 그 당사자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선택에 항상 타인이 맞춰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걸어갈 뿐입니다.

 

밭을 가는 쟁기의 비유


 밭을 가는 쟁기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자신 앞에 보이는 흙을 갈아엎으며, 농사를 위한 땅을 준비하고자 선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쟁기는 그 특성상, 앞으로만 나아가며 밭을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쟁기는 좌측과 우측으로만 조정하며 나아갈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에게는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걸어온 길을 뒤바꾸는 것도, 다른 사람 손에 든 쟁기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게 예수님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비유를 통해, 자신의 선택권이 미칠 수 없는 곳을 바라보며, 정작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택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방향을 정하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마음먹었다면, 자신의 삶이라는 밭을 갈아서 농사를 짓고자 하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밭을 갈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즉 신경 써야 할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것들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타인의 앞에 놓여 있는 일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맞지 않는 열쇠를 들고 다른 문들을 열려고 한다면, 우리가 정작 열어야 할 문들은 열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열 수 없는 문들이 아닌,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들을 하나씩 열어가는 것에 집중하면서, 우리의 밭을 조금씩 갈아나간다면, 어느새 비옥해진 우리 마음속 땅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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