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과 들보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타인의 잘못은 눈에 쉽게 발견하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점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눈 속에 있는 티끌과 들보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비유 하나를 말씀해주십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다.' 이 표현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해서, 앞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물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물리적인 차원의 길이 아닌 것처럼, 이 길을 볼 수 있는 눈 역시, 우리의 신체부위에 해당하는 눈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예수님은 뒤이어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지만, 가르침을 통해서 스승처럼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씀을 앞서 이야기하신 "눈"과 연결 지어 본다면, 제자들은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길을 볼 수 있는 스승의 시야를 얻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야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시야를 얻을 수 있지만, 간혹 그러한 과정을 생략한 채, 예수님보다 올바른 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분의 시야만큼을 볼 수는 있지만, 그분보다 더 뛰어난 시야를 지닐 수는 없는데도 말이지요.
사람들의 눈 속에는 저마다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이러한 방해물들을 하나씩 내려놓음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눈 속에는 들보만 한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티끌만 한 장애물에 먼저 연연할 때가 많습니다.
티끌과 들보로 비유한 것은, 상대의 잘못과 우리의 잘못을 비교하며, 누구의 것이 더 큰지를 따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같은 크기의 티끌이 눈 속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눈 안에 있는 티끌보다 자신의 눈 안에 들어온 티끌은 크기가 굉장히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마치 들보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
사실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고,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은 상대 눈 속의 티끌이 아닌, 우리 눈 속의 티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불편해하고 그것을 떼어내고 싶어 해야 할 티끌은, 상대의 눈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눈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여야겠지요.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상대의 눈 속에 티끌을 떼어내주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보다, 그 꼴을 견뎌내지 못하는 자신의 불편함 때문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형제는 거울과도 같다'라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닐 테지만, 상대의 눈 속에 거슬리는 티끌은,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되어 자리 잡고 있는 티끌과 굉장히 닮아있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대의 거슬리는 행동과 마음가짐이, 자신의 삐뚤어진 무언가를 떠오르게 할 때, 우리는 더욱 격한 불편을 느끼기도 합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다
예수님은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누군가를 거슬려하거나 짜증 내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길과 진실을 외치면서도, 그것을 무시한 채 잘못된 길을 가는 이들에게 마음이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괴롭게 만드는 눈 속의 들보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한밤에 꾸었던 악몽 속에서 우리를 괴롭게 했던 무언가가,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우리를 괴롭히지는 못합니다. 눈이 가려져 꿈속의 세상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는 괴로움이 되었던 무언가가, 눈을 뜨고 진짜 세상으로 나왔을 때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지요.
상대의 티끌을 보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괴로움은, 사실 상대의 눈 속에 있는 티끌로 인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과 괴로움은, 우리의 눈 속에 들어있는 무언가에 의한 것일 테니 말이지요. 상대의 잘못과 자신의 잘못을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우리가 진정으로 불편함과 괴로움을 느끼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해봅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눈을 가리던 무언가를 빼내고, 우리가 느끼던 불편함과 괴로움이 없어졌을 때, 우리는 참으로 상대의 것도 빼내어줄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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