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1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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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이 구절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건네시는 말씀처럼 다가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하느님의 함께하심과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하느님의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되찾음의 기쁨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되찾음의 기쁨'에 대해서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리고, 다시 되찾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비유를 통해 전해주시지요. 하늘에서도 회개가 필요 없는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할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회개, 즉 "다시 돌아옴"은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되찾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되찾음은 "주인"의 커다란 기쁨이기도 하지만, 그 주인과 함께하고 있는 "종"들, 그리고 "친구"들의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되찾음의 기쁨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순간, 혹은 무언가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면, 기쁨보다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무언가에 대한 상실보다는,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기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단 한 번도 무언가를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되찾음의 기쁨을 느껴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상황에서 어둠을 보기보다, 그곳에 있는 빛을 볼 수 있도록 일깨워주십니다. 

 

퇴보가 아닌 나아감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실을 두려워합니다. 마찰과 다툼을 괴로운 이유는, 그로 인해 기존의 관계에서 느끼던 좋은 감정들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찰 자체를 피한다고 해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마찰과 다툼이 우리에게 괴로운 이유는, 서로의 관계가 예전보다 못해지며,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찾아오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둘의 관계는 더욱 진실되게 변화합니다. 마찰과 다툼은 상실과 퇴보가 아닌, 진정한 관계를 향하는 "나아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예수님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도 '기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버지의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많은 것을 잃어본 후에야, 둘째 아들은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했던 것들을 알아차립니다. 그 아들은 자신이 잃었던 모든 것들 중에서, 정말로 되찾고 싶은 하나를 기억해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아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며,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줍니다. 이를 바라본 첫째 아들은 그 모습을 굉장히 불쾌하게 여기지요. 이에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신이 느끼는 "되찾음의 기쁨"을 첫째 아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하다


  첫째 아들은 둘째가 잃어버린 것들과 잘못했던 행위만을 바라보았기에 기쁨이 아닌, 괴로움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잃어가는 것들에만 우리의 시선을 묶어둔다면, 삶 자체가 기쁨이 아닌,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괴로움이 아닌, 하느님의 기쁨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되찾음의 기쁨'은 사실 하느님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기쁨입니다. 무언가를 되찾았다는 것은,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다시 갖게 됨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의 회개, 즉 다시 돌아감은 하느님에게 "되찾음"이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잃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합니다.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느님의 기쁨


 하느님에게는 '되찾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는 '상실로 인한 괴로움'은 없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들은 결국 다시 하느님께 돌아옵니다.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그러하기에 하느님에게는 상실마저 더 큰 기쁨을 위한 재료가 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기쁨은 무한한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어둠을 빛으로 바꾸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무한한 기쁨 역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인 하느님과 함께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분의 시선을 빌려 기쁨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무언가를 잃었다거나, 누군가와의 관계가 나빠졌다거나, 건강이 나빠졌다거나, 삶의 안정감이 깨졌다고 하여서, 그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상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잃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상실은 '소중한 것들을 되찾는' 기쁨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었던 둘째 아들이, 정말로 소중했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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