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세상을 통해 볼 수 있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3. 11. 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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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
흐르는 물

피조물로 미루어 보아


 오늘 독서에서는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구절은 마치 자녀의 얼굴을 보고 부모를 떠올리는 상황을 생각나게 합니다. 피조물로 미루어 보아 창조자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 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하나를 보고 열을 알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 이 말은 무언가를 배울 때, 그 하나를 응용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어쩌면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신이라는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는 특별하고도 소중한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를 보고 열을 아는 능력'을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이미 단편적인 경험을 통해,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학습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그것의 특징을 경험하며, 결국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지요.

 

세상을 보고 나를 보다


  갓난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닌 세상의 모습입니다. 자신을 향해 웃음 짓는 부모의 얼굴을 보고,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쌓아갑니다. 스스로의 모습과 존재에 대해서는, 이처럼 세상에 대한 탐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세상을 통해서 찾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의 잣대로만 규정짓고 판단하려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인지한 대상이 세상이었을 뿐, 세상이 우리를 창조한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나를 보고 하느님을 보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과 나 사이의 마찰들이 발생하지요. 그러한 경험들은 분명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나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신적 존재"에 대한 탐구도 시작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보고 나서야 하느님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흐르는 강을 따라 올라가며 물줄기의 근원을 찾는 모습과도 매우 유사합니다. 그리고 이 순서는 "탐구의 방향"일 뿐 "창조의 방향"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올바른 흐름의 방향, 즉 올바른 창조의 방향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으로 말이지요.  

올바른 순서로 놓일 때


 강물이 모두 비옥하게 흐르기 위해서는 그 높낮이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올바로 흐르기 위해서는 그 우선순위가 중요하지요. 물줄기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반대방향으로 추적해야겠지만, 그 추적방향 자체를 물의 흐름 방향으로 만들어버린다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괴로움들은 사랑의 흐름 방향을 우리의 관찰 방향과 동일시하며 생겨난 것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통해 나를 보고, 나를 통해 하느님을 볼 수는 있겠지만, 세상으로 나를 정의하고 나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정의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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