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조금의 단련을 받은 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3. 11. 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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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노인
웃고 있는 노인

조금의 단련과 큰 은혜


 오늘 독서에서는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구절을 언뜻 바라보면, 더 큰 결과물을 얻기 위해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조금의 단련은 무엇이며, 그 뒤에 얻게 될 큰 은혜는 무엇일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 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불멸의 존재였다고?


 독서에서는 마치 옛날이야기와도 같은 놀라운 내용이 등장합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본래 창조한 인간은 불멸의 존재였다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고, '고통'의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일들이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죽음'과 '고통'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과 고통은, 의롭게 살아온 의인과 악하게 살아온 악인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혜를 담고 있는 독서 말씀에서는, 고통과 죽음을 겪은 의인의 여정은 악인의 방향과 전혀 다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똑같은 죽음과 고통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죽음과 고통이 체벌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단련이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누군가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선택합니다. 무거운 물체를 스스로 들었다가 놓으며 반복하는 운동은 근육에 통증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뜀박질 역시 우리 신체에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을 '체벌'이 아닌, '훈련' 즉 '단련'이라 부릅니다.

 

 어쩌면 체벌과 단련의 차이는 우리의 받아들임에서 비롯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닌, 미래의 진행방향과 변화를 꿈꾸며 나아가는 선택은 죽음과 고통을 단련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 단련을 통해 단 한 번이라도 변화를 맛본 사람은, 그 단련의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운동으로 인한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큰 은혜를 받는다는 것


 단련 이후 우리에게 주어질 큰 은혜는, 물질적인 보상과 같은 한정된 가치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입니다. 또한 사후세계에서만 받을 수 있는 특정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마주한 고통과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을, 우리를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 주실 주님의 이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죽음과 고통을 '단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유와 희망이라는 큰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약의 당사자가 되기 위해


 무언가가 계획하고 약속한 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행하는 자와 받아들이는 자가 필요합니다. 즉, 우리들이 하느님의 계약의 당사자가 되려면, 최소한 그 약속을 믿고 서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계약서의 내용은 오직, 계약에 명시되고 그것에 동의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의인이 큰 은총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험을 통해 선택된다고도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내용은 그들이 계약의 당사자가 되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인"은 단순히 좋아 보이는 행위와 말을 하는 착한 사람이 아닌,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약속을 기억하며 '의로움'이라는 서명을 선택한 사람들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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