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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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꽃을 바라보는 소녀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예수님의 방문


 예수님은 한 마을에 들어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잠시 머무르십니다. 두 자매에게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이었으며, 예수님의 방문을 반겼던 것처럼 보입니다. 언니인 마르타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예수님이 잠시 머무는 동안,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내놓으려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분주하게 움직이기는커녕, 예수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거슬리다


 언니 마르타는 그러한 동생 마리아의 행동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정작 자신이 준비는 다하고, 편하게 놀고 있는 듯한 동생 마리아의 태도가 꼴 보기 싫었을 것입니다. 결국 참지 못한 마르타는 예수님께 동생을 일러바칩니다. 시중은 자기 혼자 들고 있는데, 동생은 가만히 있으니, 동생더러 자신을 도우라고 한마디 해달라며 말이지요.

 

 마르타의 눈에는 자신의 행동이 옳고, 마리아의 행동이 틀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마르타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만, 마리아는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동생 마리아를 꾸짖지 않고, 많은 것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언니 마르타를 타이르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동생 마리아가 선택한 몫이 훌륭한 것이며, 빼앗기지 않은 유일한 한 가지임을 드러내시면서 말입니다.

 

각자가 선택한 것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를 보며 우리는 엄청난 사실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먼저 마르타가 선택한 것을 살펴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시중을 드는 일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 해드리고 싶은 것은 많은데 자신의 몸이 잘 따르지 않자, 분주해졌지요. 하지만 그 누구도 시중드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마르타가 복잡하고 괴로워진 이유는 시중드는 일을 꼭 누군가가 해야만 하며, 그렇게 해야 예수님이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의 판단 때문이었지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의 입장을 쉽게 판단해버리고는 합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 상대방이 좋아하겠지?'라며, 무언가를 미리 행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결국 힘에 부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좋아하고 즐기는 행동이 아닐뿐더러, 상대방의 만족과 그로 인한 상대의 인정을 우선시하는 행동이기에, 자신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판단할 수 있는 것


  사실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것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향한 우리의 판단은, 매번 틀리거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마르타는 자신의 마음이 아닌, 상대의 마음을 먼저 판단하였습니다. 그 판단을 기준으로 자신이 해야 할 것 같은 선택을 하였지만, 정작 자신이 행복한 선택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판단으로 예수님이 좋아할 것 같은 일을 열심히 하였지만, 결국 자신의 판단은 진실이 아니었음을 마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힘들어하면서, 많은 것들을 염려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자신이 바라는 선택으로, 기쁘게 뛰놀며 함께하는 우리를 더 반기 실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바라는 바


 마리아는 분명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께 인정받기 위해 말씀을 경청하려 한 것도 아니며, 그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하여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마리아의 인성이 부족해서 언니인 마르타의 시중드는 일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지요. 마리아는 오직 한 가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선택하는 일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어쩌면, 곧 떠날 예수님이 잠시라도 집에 머물 때, "예수님과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라는 마음이 마리아에게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리아의 눈에는, 언니인 마르타도,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지요.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 위에서는 많은 걱정과 염려가 필요하지 않게 되지요. 우리가 어떠한 길에서 과도한 걱정과 염려를 하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길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일까?', '잠시 동안만 허락된 이 세상의 삶에서, 나의 바람보다 다른 것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그 길을 바라고 또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바랐던 '인류의 구원'을 향한 길이었지요.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한 가지뿐이며, 실제로 판단할 수 있는 것도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 즉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한 가지 말입니다.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


  잠시 동안 허락된 삶이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소유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선택의 기준을 남들이 아닌 자신에게 두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선택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깊이 걷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선택에 있어서는 남들만을 따라가는 넓은 길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길을 걸어가는 좁은 길이 행복을 향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동안 자신이 바라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진정 원했던 길이었기에,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언니 마르타가 잘못되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언니에게 와서 앉으라며 강요하지도 않았지요. 결과를 마주하기 이전에,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혹여 자신이 선택한 길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남에게 핑계 대지 않고, 자신 안에서 원인을 찾으며, 예수님과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걱정과 분노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녕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바라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몫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선택을 한 순간, 이미 그는 만족과 안정을 얻는 것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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