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희생 제물이 아닌 자비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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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생 제물이 아닌 자비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커다란 희생 제물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희생이 아닌, 자비를 강조하십니다. 오늘 복음 전문을 읽으며, 희생 제물과 자비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안식일에 일어난 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 날, 밀밭을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먹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들의 행동을 문제 삼아, 모든 일을 쉬어야 할 안식일을 기만한 행동이라고 질책합니다. 바리사이들은 그 행동을 분명,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사례를 말씀하십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어서는 안 될 제사 빵을 먹은 일화를 들려주며, 안식일에 사제가 성전에서 안식일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 율법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러곤 여기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다는 말씀도 함께 덧붙이시지요.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의 제자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례를 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정당하고,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행동의 기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바라보아야 할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주십니다.

 

무엇을 위한 안식일인가


 먼저 안식일은, 하느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약속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안식일의 본질은 규칙 자체가 아닌, 진정으로 안식을 취하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의 일에 치어서, 제대로 된 쉼을 허용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규칙으로나마 중요성을 각인시켜서,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안식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가만히 있는 것이 안식이라면, 그렇게 안식일을 보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굶주렸던 사람에게는 배를 채우는 것이 안식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에, 절대적인 기준을 쉽게 부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어떠한 기준이 아닌, 하느님 자체뿐이겠지요.

 

절대적인 것?


 하느님께서 절대자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률적인 규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 각자의 머리카락의 개수를 세어놓으셨을 만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각자가 어느 때에, 그리고 어떠할 때에 진정한 안식을 느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지요. 따라서 하느님의 의도를 무시하고, 표면적인 획일화로만 이룩한 안식일은 그저 껍데기만 남은 위선 일지로 모르겠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에 사용된 음식은, 사람이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지어 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하느님은 그 음식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음식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특별히 굶주림을 느끼는 이들에게 전해져야 할 것들이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사례들로, 표면적인 규칙들에 얽매어, 본질을 잊어가는 모습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는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율법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에서 무언가를 하여도, 안식일을 어기는 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성전이라는 곳이 특별히 거룩하기 때문에 부여된 면죄부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안식을 얻고 있다면


 성전은 우리가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찾아가는 곳입니다. 즉 성전에 있는 사제는, 몸이 교회에 있다는 상태를 나타낸다기보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를 대변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성전보다 더 큰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예수님 곁에서, 하느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며, 편안하게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휴일을 챙기면서, 일 년마다 배당된 휴가를 챙기면서도 진정으로 쉬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나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내면의 안식을 취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고 있든, 진정한 안식일을 보내고 있는 것일 겁니다.

 

희생 제물과 자비


 그런 의미에서 희생 제물이라는 표현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 희생 제물은 말 그대로, 오로지 하느님만을 위해 바치는 누군가의 제물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희생 제물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요. 하지만 이러한 강박은, 하느님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누군가의 희생 제물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향한 기도, 그리고 찬미와 찬양이, 하느님의 만족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또한 희생제물이라고 불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희생 제물과 달리, 기도와 찬미는 그것을 드리는 사람은 물론, 주변의 사람에게도 빛을 밝혀줍니다.

 

 하느님은 희생제물이 아닌, 자비를 원하십니다. 자비는 그것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의 기쁨이 되기도 하지요. 자녀들이 굶어가면서, 형제들끼리 다퉈가면서, 억지로 모은 용돈을 좋아라 할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의 가장 기쁨은, 자녀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며 전하는 소식에서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웃, 또는 자신이 소외되고 괴로워하며 바치는 희생 제물은, 절대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전하신 것은, 고통을 무릅쓰며 스스로를 희생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사람들마저도 원망과 분노가 아닌, 자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고통과 희생이 아닌, 자비와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이 나와 형제, 그리고 하느님 모두를 기쁘고 행복하게 할,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계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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