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하게 씻겨지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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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씻기
손을 씻는 사람

깨끗이 씻기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 구절이 등장합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오늘 독서 속 바오로 사도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들로,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우리와는 무관할 것 같던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새로운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간혹, 또는 자주 다른 사람과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시선에서 그 상황을 판단하며 규정짓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심판을 받을 존재이지만, 세상 속에서는 수많은 심판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올바르고 정당한 심판을 행할 수 있다면, 심판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든 일에서 정당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문제도 아닐 테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저마다의 주관적인 입장에 치우쳐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판결에서 이기기 위해


 그래서 우리는 보통, 어떠한 마찰이 발생하면 무언이 정말로 옳은 길인지를 생각하기보다, 누구 입장이 더 정당하고 합리적인지를 따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정당성과 합리성의 근거는,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에 기준을 두고 있지요.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뜻을 탐구하고, 또 그 가르침을 배워간다는 이들이,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알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고려하지 않고 왜 다른 곳에서 그 판결을 구하는지를 나무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수많은 말씀들을 통해, 늘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들을 행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이지요. 사실 자신의 충동적인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시선을 빌리다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입장을 상상하면서, 그 사람의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생명체는 사람이 유일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하느님의 뜻을 탐구하고 따르는 과정에서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바오로 사도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이 흠결 없는 존재여서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되뇌며, 그분의 시선을 잠시 빌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심판, 즉 '옳은 길을 알 수 있음'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진실의 길은


 우리는 누군가와 다툼이 발생할 때, 자꾸만 제삼자가 자신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진실이 다수의 의견으로 뒤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옳고 그름의 길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것이지, 많은 이들이 지지해준다고 하여서 잘못된 길이 올바른 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진실을 마주하고 참된 길을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시선을 빌리는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존재의 입장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바오로 사도가 언급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지혜는, 바로 하느님을 느끼고 경험한 이들이 하느님의 시선을 빌리면서 잠시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우리를 진실의 길로 이끌어주게 되지요.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는 다툼에 처했을 때,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의견을 누르고 우리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동족 간의 과도한 힘겨루기가, 두 개체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처럼 다툼에서 이김이 늘 생명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눈앞의 불의를 넘어가 주는 것, 다시 말해 상대에게 져주는 것이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일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단번에 이길 수 있는 존재이지만, 우리의 불의들을 곧바로 단죄하지 않고 기다림을 선택하시면서, 사랑과 생명을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을 빌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시선을 빌려, 불의를 불의로 대항하려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향한 올바른 길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의를 당하는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생명을 잃는다는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만약 우리도 삶의 어느 순간, 불의에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 지금 당장 살 것 같은 길처럼 느껴진다면, 잠시 자신의 시선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시선을 빌려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인지는 예수님의 시선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다는 표현은, 우리의 앞을 가려 진실을 마주하지 못하던 우리의 시선을 닦아주는 하느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에 담긴 그분의 시선을 빌리면서 깨끗해지고, 또 거룩해지며,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우리는 올바른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혼란이 찾아올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영을 통해,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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