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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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십자가
십자가

제 십자가를 지고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은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것과 예수님 뒤를 따라간다는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이야기는 분명, 단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위해서, 또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또 누군가는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는 집단을 위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삶의 이유가 될 만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시해주시는 "구세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실된 생명의 길을 걷는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라 일컬어지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미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마도 그곳엔 우리가 바라는 진실되고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예수님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 뒤에, 이러한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은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본다면, 우리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자신의 십자가가 있으며, 그것을 지고 예수님 뒤를 따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라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때의 "삶"은,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시점이 아닌, "삶"이라는 매개체로 하느님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는 관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때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치여서, 정작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잊고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곧 자신의 삶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여기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호의호식과 생존만을 위하여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에서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욱 강조되며, 행복 또한 조건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자신의 십자가로 표현된 저마다의 "삶"은, 우리가 잠시 잊고 살아가던 무언가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무언가를 목표로 삼고, 그것만 바라보면서 시야를 좁혀가던 삶에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통해, 자신의 시야를 점점 넓혀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경비를 확인하다


   예수님은 탑을 짓는 이의 비유를 드시며, 진정한 생명의 길을 위한 메시지를 또 하나 건네주십니다. 공사를 시작할 때, 공사에 필요한 경비를 확인하고 공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어떠한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전에, 그곳에 우리의 진정한 생명과 행복이 있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이유를 만들 때, 그곳에 우리의 참된 행복과 생명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 그렇게 결정을 내립니다. 그 어떠한 사람도, 자신이 불행하고 괴로워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곳에 삶의 목표를 두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삶의 방향을 정할 때 그것에 대해 많은 것을 따져보지 않습니다. 당장의 만족이 영원한 행복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며, 무작정 자신의 삶을 그곳에 걸어버리기도 하니까요.

 

임금의 지위를 내려놓고


   예수님은 전쟁을 앞둔 임금의 비유도 들려주십니다. 병력의 차이를 헤아려보고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안 임금은, 상대 임금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평화협정을 제시합니다. 이 비유는 우리 "자신"이라는 임금과, "하느님"이라는 두 임금의 관계를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싸워나갑니다. 누군가는 행복이라 믿었던 것을 쟁취하기도 하지만, 그 행복을 쟁취하는 과정보다 지키는 과정이 더욱 힘들다는 사실도 깨달아갑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모으고, 성벽을 쌓았던 그 임금에게는,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상황들도 펼쳐집니다. 그중 누군가는 자신의 임금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으며, 진정한 평화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비움 뒤의 채워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임금"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들이 많은 사람일수록, 즉 스스로를 "주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계속해서 자신이 "임금"으로 남아있는 선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에는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과 생명을 이루어낼 힘이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무모한 싸움과 처절한 패배를 경험하며,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사람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자신의 생명과 행복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임금"으로 칭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의 힘만으로 쟁취하고, 지속해나갈 수 있다고 믿을 때는 손에 잡히지 않던 "행복"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심을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우리의 삶에서 행복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각자의 삶을 살아내면서,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는 행복과 사랑을 느껴가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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