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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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종이
구겨진 종이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일어난다는 것과 가운데에 서는 행위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며, 복음 전문과 함께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


 오늘 복음에는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있던 회당 안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모함하려 하는 무리들도 함께 있었지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던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 가운데로 오게 하여 공개적으로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기 전,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지, 아니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한 지, 그리고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한 지, 죽이는 것이 합당한 지를 물어보시지요. 그렇게 본질을 묻는 질문을 던지신 후, 예수님은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뻗게 하며, 그를 치유해주십니다.

 

오그라든 손을 치유하다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기적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입장에서 치유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손이 오그라든 증상을 "하느님의 저주"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질병을 지닌 당사자가 죄를 지었거나, 그의 조상들이 죄를 지어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믿었었지요.

 

 이러한 시각으로 인해, 오른손이 오그라들었던 사람은 늘 자신의 손을 숨기고 다녔을 것입니다. 아픈 손을 숨기는 마음에는 어쩌면 자신에 대한 미움과, 하느님에 대한 분노도 함께 뒤섞여, 자신의 마음마저 점점 오그라들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예수님은 그토록 괴로움에 빠져있던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해주십니다. 그것도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고 말씀하시면서, 모두의 앞에 나오게 하며 말이지요. 손이 오그라들었던 사람에게는 어쩌면, 늘 기피했던 두려운 상황이 바로 대중들 앞에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개적인 치유는 그 사람의 오그라들었던 마음마저 치유해주십니다. 스스로를 탓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분노를 느끼며 구겨진 마음은, 예수님의 부르심과 그의 응답으로 다시 곱게 펴지게 되었습니다.

 

치유에 담긴 메시지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치유를 보여주시며,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들의 오그라든 마음의 상태를 보게 하시고, 또 그 마음이 다시 곱게 펴질 수 있음을 전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치유는 우리의 응답이 있을 때,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손이 오그라들었던 사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외면하며 자리를 떴다면,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당시 회당에 있었던 대중들처럼, 지금 우리에게도 오그라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어떠한 종교 행위 자체에는 커다란 무게를 두지만, 정작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무언가가 오그라들게 되면, 그것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마음이 쓰인다"라는 표현은,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본능이 있음을 알게 해 주지요.

 

 우리는 자신의 치부와 부족함을 더욱 가리려 할수록, 점점 우리의 마음은 더 어두워지고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이 느껴진다면, 오른손이 오그라들었던 사람의 치유를 떠올리며, 힘차게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그 옛날, 회당 가운데에서 오그라든 손을 치유해주셨던 예수님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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