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에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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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세 개의 빵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불어넣어 줍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찾음'과 '얻음'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복음에서는 한밤중, 친구를 찾아가 빵 세 개를 부탁하는 사람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집에 방문한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이 없어서 친구에게 빵을 꾸러 간 것이었지요. 하지만 친구는 잠든 가족들을 신경 쓰면서,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빵을 꾸러 간 그 사람이 계속해서 친구에게 졸라 댄다면, 친구는 결국 빵을 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일화를 자칫 잘못 이해한다면, 무작정 떼를 쓰며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무언가를 쟁취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화에 담겨있는 요소들을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아무 상황에서 무작정 떼를 쓰는 것이 항상 정답일 것이라는 오해는 비켜갈 수 있습니다.

 

관계의 우선순위


  우선 빵 세 개를 꾸려했던 사람은, 자신과 손님을 위한 빵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빵을 가지고 있던 친구에게는 그들의 요구보다, 가족들의 평안이 더 우선시 되었지요. 빵이 필요했던 사람은, 친구라는 관계를 내세우며 부탁을 시도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가족 간의 관계보다 더 우선시 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살아가면서 '관계'에 큰 의미를 둡니다. "내 사람"과 "타인"을 구분하고, 가족과 이방인을 구분합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관계의 구분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며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던 장면과, 예수님께 치유의 기적을 부탁했던 이방인 여인에게 "자녀들에게 줄 것을 개에게는 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장면을 미루어본다면, 분명 관계에는 "우선순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뒤엎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이러한 관계의 "우선순위"를 뒤엎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계속해서 청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애타게 찾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는 "간절함"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세상에서 "성공"한 다양한 사람들의 일화를 살펴보면, '간절함'에 대한 메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공을 '자신이 바라던 바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것은 바로, 그들의 "간절함"이었지요.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이러한 경험과 비결을 자신의 친족, 즉 자녀들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자신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관계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실제 그들의 경험과 비결은, 그것들을 "가장 간절히 여기는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가치를 부른 이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빵 세 개의 일화"를 살펴봅시다. 친구의 집에 있던 "빵 세 개"는 결국 자신들을 가장 애타게 기다리던, 자신들을 간절히 원하던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본래는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가족들이 섭취할 빵이었겠지만, 그 빵은 자신을 간절히 원하던 사람과 그의 손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에사우와 야곱의 일화도 그러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간절히 바랐던 동생 야곱은, 형인 에사우에게 전해져야 할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 방법이 비록 바람직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축복은 자신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간절히 원했던 사람에게 돌아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와 서비스는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주는 곳에 머무려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간절함"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우선순위'를 뛰어넘어, 가장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가 자리 잡도록 만들어냅니다. 마치 경매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에게 해당 물건이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간절함의 무게


 우리는 때때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간절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간절함'에 대한 무게를 잘 알지 못하였기에 내린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간절함은 단순히 어떠한 대상을 탐하는 마음을 뛰어넘어,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절함은,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이에게 계속해서 "청하고", 그것이 있는 곳을 계속해서 "찾으며", 그것이 들어 있는 곳의 문은 계속해서 "두드릴" 만큼, 무겁고도 커다란 일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는 무언가를 향한 '간절함'에는, 그 대상을 '연구'하는 마음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빵이 필요했던 사람은, 빵이 있을만한 사람이 누구일지를 계속해서 고민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무턱대고 아무에게나 찾아갔다면, 빵이 없는 사람에게 빵을 찾는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청함"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러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연구'할 만큼 계속해서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께 청하다


  우리가 삶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고 있다면, 그 안에 담긴 궁극적인 우리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딘지, 그리고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딘지를 고민해봅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가치는 하느님께 청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은 분명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 받을 것들이 우리에게 좋은 것들임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의 가치를 우리가 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은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며, 하느님의 은총은 그 가치를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머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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