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예수님을 시험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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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시험하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복음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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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문

마귀를 쫓아내다


 복음에서는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의 힘이, 하느님이 아닌, 악마 베엘제불에게서 온다고 생각하였지요. 편협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경험과 시각으로만 해석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마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상식 밖의 일들을 항상 그렇게, 귀신 혹은 마귀의 장난이라고 받아들여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한다"라는 말씀을 전하며, 마귀라는 존재들이 서로를 쫓아내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여러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지 못하는 진실들을 함께 알려주십니다. 

 

진실을 알리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기 기적을 행하신 것도, 말씀을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그 힘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더러운 영은 왜 그 사람에게 머물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행하신 일들이었지요. 또한 사람들에게, 더러운 영이 쫓겨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궁극적으로 더러운 영이 우리에게 머물지 못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지요.

 

 더러운 영은 하느님을 피해 다니는, 즉 "죽음"을 향하는 존재입니다. 어둠에만 머무는 존재들을 피하고 싶다면, 빛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단,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한 번 밝아졌던 공간이라도, 현재 그곳을 비추어주는 빛을 가리고 있다면, 그곳은 어두운 공간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그림자는 강한 빛을 가릴수록 더욱 진해지는 법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인을 선택하다


 복음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던 자세는,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랐던 청하는 태도가 아닌, 자신들을 납득시켜보라며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듯한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마치 자신이 하느님의 종이 되기보다, 하느님의 주인이 되기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주인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주인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아무리 외쳐보지만, 스스로의 한계와 나약함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기에, 결국에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대상을 찾게 됩니다. 누군가는 돈의 하수인이 되기로 선택하고, 누군가는 권력의 하수인이 되기로 선택하며, 누군가는 기이한 현상 자체의 하수인이 되기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따르는 종이 되는 선택은, 하수인의 길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에서 우리의 선택을 늘 존중해주시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어주십니다.

 

선택이라는 각자의 몫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몫을 남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에도 그러한 저마다의 몫이 있으며, 믿음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가 결정할 몫입니다. 자신의 나약한 믿음을 알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할 수는 있지만, 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따르기로 선택한 이후에 드릴 수 있는 간절한 청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자 하는 선택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당신이 신이라면 나를 납득시켜보라는 접근은 우리의 선택을 꺾고 우리의 존재를 망가뜨리라는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는 하느님마저도 존중해줄 만큼 커다란 것이지요. 우리의 선택과 자유는 하느님께서 존중해주셨기에 소중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마치 하느님에게 대단한 것이 되는 것 마냥, 선택을 빌미로 이것저것 지시하는 모습은 누가 주인인지를 혼란스럽게 하는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입니다.

 

마음속의 집


 우리는 마음속에 저마다의 믿음의 대상, 즉 주인을 모시면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신의 마음속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과도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믿음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무엇을 믿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깨끗하게 정돈된 집보다, 그 안에 누구를 모시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집에는 어떠한 존재가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었다는 기적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마귀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 집에 살고 있는 존재의 정체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되돌아보며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더러운 영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이 없는 곳을 돌아다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생명을 뜻하며, 하느님의 말씀, 즉 생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더러운 영은 생명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머물 수 없습니다. 더러운 영은 생명을 추구하는 마음, 즉 하느님을 향하는 선택이 없는 마음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므로 한때 생명을 추구하면서 마음을 깨끗하게 정돈하였지만, 지금은 생명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더러운 영에게는 최적의 쉴 곳이 될 테지요. 심지어 더 많은 더러운 영들과 함께 들어갈 만큼 말입니다.

 

 예수님의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자신에게 강렬한 빛을 청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그 빛을 가리고자 하는 장애물이 없다면, 강렬한 빛은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줄 테지만, 하느님과 우리의 사이에 그 빛을 가리는 가림막이 있다면, 표징이라는 강렬한 빛은 마음속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들 뿐입니다.

 

누군가의 편에 서다


 예수님의 "내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라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해줍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 수 있는 선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선택을 위해서는, 양쪽 편의 힘을 비교하고 승산이 있는 곳을 파악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자신이 손가락만으로도 마귀를 쫓아내었음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인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누가 진정한 강자이며 어디가 이기게 될 편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상식 밖의 일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여정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할 한 줄기의 빛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죽음 너머의 여정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가득하더라도, 그 여정에서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스스로 찾고, 또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을 겪도록 허락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지 못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그치지 않도록, 마음속 눈과 귀를 조금씩 열어봅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그것들을 단순히 우리의 사고 수준으로 끌어내려 해석하고 판단하려 하기보다,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이끄심이 온전한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받아들여봅니다. 하느님의 빛을 가리어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하느님을 알아가겠다는 선택을 이어나가며, 삶에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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