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것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주님께 이러한 청을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기도란 무엇이며, 또 기도에는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기도하시는 예수님
복음에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누군가는 기도를 '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기도를 '도를 닦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기도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 기도는 '신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기도가 예수님께는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궁금해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거나, 자신의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전달하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바람과 염원을 응축시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역사 동안 많은 이들은 '올바른 기도'를 위하여 연구하고 노력해왔습니다. 더 나은 기도 방법을 위해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기도로 보낸 이들도 있었을 만큼 말이지요.
쉼의 시간
조금은 놀랍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으며, 하느님의 말씀이자, 하느님이셨던 예수님 역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특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리셨음은 표현되어 있지요. 어쩌면 예수님께는 기도가 유일하고도 진정한 쉼의 공간이자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세상에서 머리를 기대 쉴 곳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예수님의 기도들을 되돌아보면, 무언가를 채우려는 것보다 비우는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 기도를 드리셨다는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예수님 역시 기쁨과 즐거움에 충만해지기 위해 산에 올라 기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머릿속의 혼란과 수많은 고민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받았을 다양한 스트레스 등을 비워내시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움의 기도는, 우리에게도 필수적인 "온전하고도 완전한 휴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함께 듭니다. 기도는 세상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여러 부산물들을 내어놓듯 마음을 비우고, 오직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삶에서 지친 자신을 씻기고 쉬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제자들은 기도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침을 듣고자 예수님께 기도하는 법을 여쭈어봅니다. 이에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로 알려진 하나의 기도문을 읊어주시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다양한 형태의 "청함"이 담겨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오심과, 일용할 양식, 그리고 죄에 대한 용서와 이끄심을 청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청함"은 무작정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내세우는 일방적인 외침과는 달라 보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담긴 "청함"은, 요구보다는 "받아들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도는 하느님을 보다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임을 통해 우리는, 놓치고 있던 진실과 행복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갑니다.
아버지라 부르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칭하는 그 마음에는, 하느님에 대한 받아들임과 사랑, 그리고 믿음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내용도, 아버지라는 호칭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더불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청은, 아버지의 도움이 없다면 빠져 길을 잃을 어린아이를 떠오르게 하며,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아들여야 하는 필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청함"이 담겨있지만, 그 "청함"은 결국, "받아들임"을 위한 청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느님의 이름과 뜻, 그리고 그분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자라나게 하는 매일의 양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느님의 주도권과 자비, 그리고 이끄심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릇을 씻다
현대까지도 기도문을 통해 전해지는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은, 삶에서 우리가 담고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그릇에 먼지가 쌓이거나, 사용했던 그릇에 얼룩이 생겼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서 그릇을 "씻는" 선택을 합니다. 어쩌면 기도도 우리의 영혼이라는 그릇을 하느님께 맡겨, 씻어주시기를 청하는 선택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기도의 시간은, 단순히 그릇에 이것저것을 담아달라고 조르는 시간이라기보다, 얼룩진 우리가 조용히 내민 그릇을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씻겨주시는 시간이 아닐까 상상해봅니다. 그러므로 더러워진 그릇을 불편하게 생각하며, 하느님께 눈치를 보고 나아갈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놀랍게도 하느님은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주신 다음, 우리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음식을 예쁘게 담아주시기도 하십니다.
아버지를 찾다
기도는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 딸이 아버지의 곁에서 멀어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린 소녀의 외침은 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멈추게 되며, 아버지가 곁에 있음을 알아차린 소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을 이어나가게 되지요.
기도를 많이 하고, 더 거룩하게 하며, 더 오래 하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의 "방법"과 "모습"을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질"을 대답해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길을 잃어 아버지의 이름을 외치는 것처럼 말이지요. 오늘도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일용할 양식과 이끄심을 청해봅니다. 그리고 그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함께하심 느끼고, 삶의 여정을 기쁘게 이어나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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