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면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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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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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요. 복음 전문을 읽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관계에서 오는 기쁨


 우리는 일찍이 성공하거나 주목을 받게 된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의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성공보다, 자식의 성공을 더 큰 선물로 여길 만큼, 훌륭한 자식을 둔 기쁨과 행복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군중 앞에서 말씀을 전하던 예수님을 본 한 여인 역시, '예수님을 품고 키웠던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 여인의 생각은, 목소리를 높여 입 밖으로 표현될 만큼 확신의 찬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도 많은 것들이 자유로워지고 기쁨을 얻게 되는데, '항상 함께 있었고, 곁을 지켜왔던 예수님의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하고 기쁨에 가득 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면 오히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한때 예수님은,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이야말로 나의 어머니요, 형제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행복"과 "관계"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깨닫게 도와줍니다.

 우리는 흔히 관계의 소중함을 관계의 특별함에서 찾을 때가 많습니다. 같은 출신이라서, 같은 민족이라서, 같은 혈육이라서 그 관계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 특별함에서 오는 소중함은 쉽게 깨져버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역사 동안 같은 민족이 전쟁을 치르고, 같은 혈육이 서로를 죽이고 모함하는 사례를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절대적일 것 같던 관계의 특별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그들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경우도 허다하였지요.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려면, 그 관계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생명"이라는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관계의 특별함에 얽매어, 생명을 향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해서 따라간다면, 그 둘의 관계에서는 기쁨과 행복을 찾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관계의 시작은


 사실 우리가 특별하고도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관계들은, 하느님의 창조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기 전부터, 하느님은 만물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들의 가족이 되기를 자처하셨고, 임금이 되어 민족들을 이끌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특별하고도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들의 가치와 기쁨은,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관계를 통해 하느님과 이어짐을 느낄 수 있을 때만, 그 관계의 진정한 가치와 기쁨이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의 잘못된 선택과 부족함으로 인해, 하느님에게서 부모로, 부모에서 자녀로 이어지는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의 근원을 "관계"에서만 찾는다면, 세상에서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 행복, 그리고 사랑의 근원을 "관계"가 아닌, "말씀"에 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랑의 근원을 말씀에 두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말씀이 부담스러운 이유


 신앙인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지키기도 어려운 여러 계명들과 가르침에 얽매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은, 이러한 강박과 위선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은, 메마른 땅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 지도와 나침반을 보면서 방향을 따라가고 길을 지켜나가듯, 말씀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랑의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분명 예수님은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겉보기에 제약이 많아지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제약은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착용하는 안전벨트가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라고 인지한 사람에게는, 안전벨트가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만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사람에게는,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 자체가 큰 불편함과 괴로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생각보다 우리들은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요시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들은 결과 자체보다는, "과정"에 놓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훌륭한 자식을 둔 부모가 기쁜 이유는, 자식이 훌륭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훌륭하게 자라온 그 과정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서일 것이고, 여행이 재밌었던 이유는 최종 목적지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흥미로웠기에 그러한 것일 테지요.

우리는 결과에 따라 우리의 기쁨과 행복을 섣불리 단정 지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과정이 보람되고 기뻤을 때, 기쁨과 행복이라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결과에만 얽매이다 보면 잘못된 과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풍족함이라는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이 오히려 공허함에 쉽게 빠져버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우리가 어떠한 과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끝에서도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은, 이처럼 행복을 결과에만 두지 말고 과정에서 찾을 때, 오히려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과정이 있을 때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무언가를 움켜쥐었을 때 불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명을 선택하는 존재에게, 자연스럽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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