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해질 때
누구나 한 번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을 것이다. 원하는 시험 결과를 바란 적이 있을 것이며,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간절히 바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픈 상태가 완치되기를 간절히 바라거나, 행복을 바란 적도 있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구절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부탁하는 여인의 목소리다.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사실 간절함이라는 마음은 무거운 상황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탈이 나서 배가 아파본 적이 있는가? 화장실을 가지 못해서 화장실을 절실하게 찾은 적이 있는가? 필자의 경우, 이때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이러한 간절함을 떠올리니 "화장실을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볼일을 보기 전에는 간절했던 마음의 농도가, 볼일이 해결된 후에는 점점 옅어진다.
볼일이 있을 때
기도도 이와 비슷할 때가 있다. 내가 볼일이 있을 때 하느님을 찾는다. 이 자체가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볼일이 없을 때도 하느님을 찾는다면 정말 성숙한 신앙인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하기는 쉽지 않다.
상대와의 친분
평소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볼일을 말할 때도 어려움이 없다. 반면에 상대와 서먹하거나 무관하다고 느낄수록 볼일을 말하기 껄끄럽다. 배 아플 때 모르는 사람의 화장실을 쓰기 어디 쉬운가? 사실 배가 죽도록 아프면 청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동네 편의점 화장실을 쓰기 위해 빌고 빌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볼일을 보고 나서
만약 볼일을 보고 난 사람이 감사의 인사도 없이, 모른 척 지나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멀어질 것이다. 그만큼 볼일을 보고 나서의 행동은 앞으로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왠지 선한 예수님이 했으리라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이 등장한다. 자신의 앞에서 딸을 위해 애걸복걸하는 여인을 "강아지"에 비유하지 않았는가. 당시에도 강아지라는 표현이 욕설처럼 쓰였는지는 모르지만, 존중의 의미가 담긴 표현이 아님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여인은 굴하지 않고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한다.
스스로의 행실을 인정하다
여인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여인은 자신이 강아지처럼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자신은 당신의 자녀처럼 살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당신의 가족으로 살아가지는 못했으나, 당신이 가족들에게 전하는 그 빵이 지금 자신에게는 필요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부탁하는 마음속 불순물
사실 예수님은 여인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다. 여인의 부탁하는 마음 안에,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 남을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예수님에게 청하는 여인의 마음에는 염치없음과 같은 여러 불순물들이 끼어있었다. 볼일이 해결되고 난 후, 청하고자 했던 마음이 사라지면 이러한 불순물만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호의를 베푼 상대로부터 숨고 싶은 마음만 남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적나라한 표현으로 여인의 마음을 드러내 주었다. 볼일을 보고 나서도 그 여인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의 볼일
오늘도 하느님께 눈을 감고 청해 본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볼일이 있어서 왔음도 인정한다. 기도 안에는 이런저런 눈치를 모두 빼야 한다. 단순히 청하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가보자.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그 청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했을 때, 숨지 않고 감사할 수 있으면 된다. 사실 상대가 부탁을 들어주었음에 감사함을 표하면서 관계는 돈독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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