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다 이유가 있었다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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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마치 퍼즐 조각처럼

예외 없이 모두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외가 없는 경우를 경험하기는 어렵다. 오늘의 말씀 구절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를 보면 '정말 그럴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오늘의 말씀 구절이 담긴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말씀의 의미를 되뇌어본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오늘의 말씀 구절이 담긴 복음 전문

과정과 결과

 어떠한 일을 받아들일 때, 그 일이 좋은 일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결과'에 있는 듯하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지만, 일의 끝맺음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그 일을 판단하게 된다.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한 일도 마찬가지이다. 결과만 살펴본다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료하였으니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좋은 일을 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주위 사람들은 이를 칭송하며 전하기 시작한다.

근데 왜 말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런데 분명 예수님은 이 사실을 전하지 말라고 하셨다.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싹튼다. '아니, 예수님은 좋은 일 해놓고 왜 그걸 알리지 말라 하시지?' 겸손의 일종이려나 하고 생각해보니, '어설픈 겸손은 또 위선 아닌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 문득 과정에 대한 생각이 이어졌다.

생략되는 과정

 좋은 일을 전할 때, 보통 좋았던 결과만을 전달하게 된다. 서울대에 합격한 김 씨, 삼성에 취직한 박 씨, 100억을 벌게 된 강 씨, 바르고 건강한 자녀를 둔 이 씨, 멋진 몸매를 가꾼 최 씨. 모두 결과만을 강조하고 또 전달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그들이 겪은 과정이 아닌, 결과만이 조명될수록, 그 길에 어떠한 책임과 고통이 수반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예수님의 치료 과정

 그렇다면 동네 사람들이 전했던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 예수님의 치료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래는 복음에 나온 예수님의 치료 과정이다.

  1.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들 사이에서 따로 데리고 나온다.
  2.  자신의 손가락을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두 귀에 넣는다.
  3. 귀에 들어갔다가 나온 손가락에 자신의 침을 바른다.
  4. 또 그 손가락을 '귀먹고 말 더듬는 이' 혓바닥에 가져다 댄다.
  5. 그러고는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쉰다.
  6.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열려라(에파타)"라고 말한다.
  7.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치료되었다.

 "아니, 이 얼마나 괴상하고 엽기적인 치료과정인가." 코로나 시대에서는 아주 큰일이 날 충격적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음미해보았다.

 

1.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군중들 사이에서 따로 데리고 나온다.

 예수님은 군중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그 사람과 단둘이 자리를 마련하고 치료를 했다. 하느님의 일은 모든 사람에게 획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상태와 성향, 그리고 환경을 모두 고려하며 세심하게 맞춤 교육을 해주신다. 그러니 자신이 시행할 치료법은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치료법이다. 군중들 사이에서 만약 치료 과정을 전부 보였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 치료법을 흉내 내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소용이 없을 괴상한 행동들을 따라 했을 것이다. 또한 치료를 받는 사람에게도 개인적인 공간이 보장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기적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대부분의 기적은 우리의 내면에서 이루어진다. 

2. 자신의 손가락을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두 귀에 넣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힘들어하고 있는 그 부분에 직접 들어오신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에 직접 들어오시기에 불편함과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한 번은 종기를 짜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소리 친적이 있다. 엄마는 왜 날 치료해준다고 하면서 더 아프게 해! 치료의 과정에서는 때론 그 고통이 일시적으로 커지기도 한다.

3. 귀에 들어갔다가 나온 손가락에 자신의 침을 바른다.

 침을 바르고 귀에 넣는 게 아니라, 아픈 부위를 찍고 침을 바른다. 어쩌면 그 고통을 자신이 맛보는 행위처럼 다가온다. 하느님은 치료 대상의 고통을 온전히 느낀다. 그 고통을 그대로 느낀 후 그에 맞는 치료약을 제조한다. 

4. 또 그 손가락을 '귀먹고 말 더듬는 이' 혓바닥에 가져다 댄다.

 고통을 함께 느끼고 만든 치료약을 이제는 아픈 이에게 제공한다. 치료약을 받아들일 때, 치료 과정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치료가 시작된다. 아픔을 진단하고 치료약을 전달하는 것은 모두 예수님의 손가락을 통해 진행된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신을 진단해주고, 또 치료해주는 예수님의 손가락(도구)으로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5. 그러고는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쉰다.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는 장면은, 하늘에 대한 원망 또는 탄식을 떠오르게 한다.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 너무 고단하고 서러워서 하늘을 원망할 때가 있다. 그러한 상태가 지속될 때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미로에 갇힌 기분마저 든다. 하느님은 이러한 답답함마저 함께해주신다.

6.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열려라(에파타)"라고 말한다.

 정말 희한하게도 치료의 과정은 길었지만, 치유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마치 창문이 활짝 "열리고" 햇빛이 집안을 비추듯, 순식간에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항상 함께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또 감사함과 사랑을 망설임 없이 표현할 수 있게 된다.

7.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치료되었다.

 그렇게 듣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던 이는 고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픈 곳이 치유되면 자유로워진다. 아파서 스스로 숨어있기를 택했던 이는, 이제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치료가 된 사람은 자신이 겪었던 모든 과정이 훌륭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치유의 과정 일곱 단계가 마치 6일을 일하고 7일 째 쉬었다는 창조의 과정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가? 하느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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