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기적
오늘의 말씀 구절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이다. 이 구절은 사건은 '빵 일곱 개가, 빵조각 일곱 바구니가 되는 기적'을 기록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성경은 이 기적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복음 전문
이해하려 할 때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지닌 상식, 또는 지식을 바탕으로 추측해 나간다. 빵을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군중들이 숨겨놓은 빵조각을 하나씩 꺼내서 일곱 바구니가 되었다는 해석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리 개운한 해석은 아닌 듯했다. 사흘 동안 굶었는데, 무얼 어떻게 더 숨기며, 그것들을 내놓았는데 일곱 바구니의 빵조각이 어떻게 나온다는 것인가. 또한 군중들이 숨긴 빵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예수님이 그들을 걱정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처럼 그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초점을 두며 이해하려 할 때,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지는 것 같다.
들으려 할 때
가끔 상대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그 사람의 의도를 왜곡시킬 때가 있다. 때로는 가만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그의 의도를 더 쉽게 알아차리게 도와주기도 한다. 상대 이야기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먼저 따지기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음미해본다.
기적 속 의미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적을 행하면서까지 지금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신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새로운 빵을 만드는 방법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지닌 빵을 나누는 방식으로 기적을 행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기적이 다 일어난 다음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빵을 두고 감사기도를 드린다. 지금 지니고 있는 이 빵은, 하느님에게서 받았음을 감사기도를 통해 확인하는 것만 같다.
내가 지닌 빵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빵이 있다. 자신이 받은 능력일 수도, 지금 지닌 평화일 수도, 잠시 깨닫게 된 지혜일 수도 있는 이 빵은 하느님에게서 왔다. 무언가를 청하여 받은 적이 있을 때, 그것을 두고 감사기도를 드린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빵을 청하여 받는 이들도 있지만, 복음 속 군중처럼 굶주림 속에서도 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빵을 지닌 사람의 나눔이 필요할 때가 있다,
빵에서 더 많은 빵조각으로
모든 사람이 동시에 배부른 상태라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빵은 전해지지 않고 썩는다. 지금 그 빵이 돌고 돌아 모두에게 전해지면서 빵은 더 풍족해진다. 하느님께서 주신 빵은 나눌수록 커진다. 당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중, 하느님께서 주셨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능력과 재능일 수도, 혹은 따뜻한 말 한마디일 수도 있다. 그 빵을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빵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고 그것을 나눈다면, 빵과 함께 우리의 행복 또한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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