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를 더럽히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2. 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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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진 손
더러워진 손

그게 아니다

 누구나 잘못 생각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갈 때가 있다. 오늘의 말씀 구절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에는 잘못 알고 있는 무언가를 알리려 하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너희의 생각이 실제와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을 깨닫길 바라시는 건지 복음 전문을 통해 살펴보자.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깨끗해지고자 하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깨끗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듯하다. 선해지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정작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깨끗해지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더러운 음식? 더러운 욕구? 더러운 세상? 외부적인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면, 그 외부 요소들을 차단시키는 것만이 깨끗해지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더러워지는 게 싫어서 아예 나가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극단적인 다이어트

 다이어트는 현대인들의 공통 관심사이다. 필자 역시 다이어트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살찌는 것이 싫어서 음식을 아예 먹지 않은 적도 있다. 과연 옳은 선택인 걸까? 음식이 날 살찌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그리고 생활패턴이 살을 찌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패턴들이다. 음식을 탓하며 무작정 멀리하려는 다이어트는 쉽게 성공하지 못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

 인간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할 때가 있다. 물론 사람의 말과 행동(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 말과 행동을 자꾸 곱씹고 품으면서 상처를 키워가는 경우도 있다. 상처받기 싫어서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 자체를 없애버린다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근육이 점차 사라지고 고립된다. 

욕구 

 그렇다면 욕구 자체는 어떠할까? 물론 갈망 자체가 더러운 것은 아니다. 욕구를 해소하는 과정이 잘못되었을 때 그 부산물은 변질된다. 누구에게나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행복을 낳는다. 하지만 배우자가 아닌, 타인을 통해 그 욕구를 해소한다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긴다.

 욕구 자체를 없애는 것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욕구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욕구가 없는 사람은 천사가 아니라 좀비일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잘못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변형된 것이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 

비겁한 변명

 필자는 때론 비겁한 변명을 할 때가 있다. 불쾌감과 불행함을 느낄 때 무작정 주변 환경을 탓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더럽다고 말한다. 사실 세상은 더럽지 않다. 세상은 바라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세상이라는 음식을 어떻게 요리하고 소화시키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상이 더럽다고 말하면서 갇혀있기를 선택하는 것은 건강해질 수 있는 방향이 아니다. 자신만의 편한 세상 안에 갇혀있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세상이 더러워서 자꾸만 나만의 세상을 찾아가는가? 예수님도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지냈다. 평생 세상을 등지고 산다고 해서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자라난다. 세상 자체가 더럽다면서 멀리하는 순간 고립과 쇠퇴의 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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