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그저 말씀만 해주신다면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9. 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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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대장
백인대장과 예수님

그저 말씀만 하시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백인대장의 이러한 청에는,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어떻게 지닐 수 있을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백인대장의 노예


 여느 때처럼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던 예수님께, 유다인의 원로들이 찾아옵니다. 그 원로들은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을 거느리던 백인대장이, 자신의 소중한 노예를 살리기 위해 보낸 이들이었지요. 원로들은 백인대장의 공로를 전하면서, 백인대장은 그의 청을 들어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백인대장의 노예를 치유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려 합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서 직접 오시지 않고 말씀만 아뢰어주신다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직접 예수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뵈옵기 합당하지 않다는 마음에서였음을 알리면서 말이지요.

 

예수님의 감탄


  예수님은 이러한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면서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하시지는 않았지만, 백인대장의 노예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감탄하셨던 백인대장의 믿음은 무엇이었으며, 그러한 믿음을 어떻게 지닐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백인대장은 자신의 휘하에 백 명이 넘는 병사들과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인인 백인대장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목숨도 내놓는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복음에 등장한 백인대장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부하와 노예를 진실로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와서 누군가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의 치유를 청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노예'가 가족이 아닌, 재산, 즉 소모품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복음에 등장한 백인대장이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다


  아마도 백인대장은 이처럼 사람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참 면모를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말씀, 즉 예수님의 "명령" 안에는, 지위나 권력에서 나오는 힘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이 담겨있으며, 그 사랑의 대상은 모든 이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백인대장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였기에 백인대장은, 예수님이 자신의 집까지 찾아오면서 자신의 노예를 살리러 오시는 것이, 자신의 지위 때문도, 자신의 공로 때문도, 자신의 인품 때문도 아닌,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에 의한 선택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협소한 사랑


  백인대장의 노예는, 백인대장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에게는 사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완벽한 타인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다며, 자신이 합당하지 않다고 느낀 부분은, 지위나 권력의 차이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백인대장은 자신의 지위나 권력보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에 더 큰 무게를 두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백인대장은 죽어가는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적대시하며 짓밟았던 수많은 생명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 심지어 원수마저도 사랑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 앞에서, 자신의 협소한 사랑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사랑이 협소함을 알고 있는 겸손과, 무한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인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백인대장의 단단한 믿음이 되어, 예수님을 감탄하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믿음은, 논리와 사고를 통해서가 아닌, 커다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자신의 기도가 이기적인 것처럼 느껴지며, 예수님께 청을 드리기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무작정 숨어있기보다, 자신의 청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따지면서 망설이고 있기보다, 우리의 협소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집까지 찾아와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합당함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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