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기도는 거래가 아니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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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성전

기도의 집이 되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이 구절은 기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도의 집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기도와 기도의 집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강도의 소굴


 오늘 복음에 등장하시는 예수님은 "기도의 집"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지적은 오늘날의 성전에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드린다고 사람들이 모이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다른 목적을 지닌 일들이 펼쳐지는 광경을 우리는 쉽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그들의 행태를 "강도"와 비교하였습니다. 강도는 위압감과 공포를 불러일으켜 상대방의 재산을 갈취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지요. 만약 우리가 성전에서, 혹은 공동체에서 위압감과 공포로 인해 무언가를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그곳은 기도의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집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펼쳐져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말씀,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 듣는 곳입니다. 그러나 몇몇 성전에서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빙자하여 상술과 약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거래가 아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물건을 파는 것은 "거래 행위"를 뜻하겠지요. 우리는 흔히 "기도"를 "거래"처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성당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와 같은 기도 안에는, 어떠한 조건과 대가들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하느님과의 거래는 사실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공부 열심히 하면 선물 사줄게!", "밥 잘 먹으면 사탕 줄게!"라는 보상 형태의 거래를 쉽게 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것과,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그러한 보상 때문이 아닌, 스스로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보상을 요구하다


  만약 어떠한 사람이 자신이 숨 쉬고 있는 대가로 누군가에게 보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황당해할 것입니다. 본인의 생명은 본인에게 좋은 것이지, 자신의 생명이 남을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위해서 거래되는 조건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기도 앞에서 잊어버립니다.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의 시간에서 우리는 자꾸만 하느님께 무언가를 팔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기도"와 "가르침"은 분명 상호작용이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 상호작용에서는 "주어짐"과 "받아들임"이 있을 뿐이지요. 기도의 집, 즉 성전은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위해" 가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무언가를 대가로 받는 거래가 아닌, 하느님께서 흘러나오는 생명과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한 자리일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


 사람이 있는 곳에는 사람의 "욕심"도 함께 있습니다. 기도의 집이라고 칭하면서 상인과 강도의 모습으로 욕심을 채우는 모습을 우리가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꾐과 속셈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은 "거래"가 아님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역시 병자들을 치유해주고, 가르침을 전하면서 보상을 요구하거나 대가를 바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빙자한 상술과 강도짓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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