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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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
과일나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 말씀 구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어머니와 형제들


 군중에게 가르침을 전하던 예수님의 앞에 한 사람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을 천하러 온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 말에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는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말씀은, 많은 의문점들을 남깁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가족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누가 가족인가


  예수님께는 분명 피를 나눈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 동안 "피를 나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녀왔으며, 오늘날에도 혈연관계는 굉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불러왔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자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족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아버지인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지요.

 

생명의 공동체


 두 남녀가 만나서 자녀를 낳게 되면 그 공동체는 특별한 관계로 끈끈해져 갑니다. 그 공동체를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믿기에,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지니는 신비로움과 소중함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가족은 가장을 필두로 움직이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을 "가장"이라고 부르지요. 가장의 생계 수단이 끊기면, 가족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만큼 "가족"은 "생명"과 직결되는 공동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명의 근원


   우리는 가족을 생각하며, "생명"이라는 가치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이 "생명"이라는 가치에서 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진정한 생명은 아버지인 하느님께서 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육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과 정신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을 통해 유지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과일나무를 떠올려봅니다. 우리가 "나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 대상은 생명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부러진 나뭇가지를 "나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또한 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나 열매 역시, "나무"라고 부르지 않지요.

 

 나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생명"을 지녔을 때, 그리고 온전히 그 생명과 이어져있을 때 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족" 역시, "생명"을 지니고 있을 때, 즉 생명의 근원과 이어져 있을 때 그 진정으로 "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과 이어지다


 따라서 생명을 품고 있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어짐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가능해지지요. 하느님은 올바른 우선순위를 강조하시며, 생명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뿌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잎사귀가 있다면, 그 나무는 살 수 없게 되듯, 진정한 생명을 위해서는 "올바른 위치"에 우리가 자리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올바른 사랑의 순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생명을 지닐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생명은 하느님을 통해,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졌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과정에는 분명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선이고, 진정한 생명을 향한 길인지를 탐구하며 선택의 기로에서 "선"을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실천하는 "하느님의 가족"이 됨을 선택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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