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착하고 성실하다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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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마을

권한을 가져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이 구절은 착함, 그리고 성실함이 우리의 권한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진정한 착함과 성실함은 무엇이며,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을 권한은 무엇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내가 올 때까지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 비유는 한 귀족이 왕권을 받아오는 동안, 자신의 종들에게 재산권을 잠시 맡겨놓는 상황을 담고 있었습니다. 비유에는 등장한 세 명의 종에게는 같은 가치의 재산이 주어졌지만, 그 결과는 달랐습니다.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맡아두었던 재산을 열 배로, 두 번째 종은 다섯 배로 불려내었지만, 마지막 종은 그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고만 있었지요.

 

 임금이 되어 돌아온 귀족은 이러한 상황을 보고, 자신이 준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만 있던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열 배로 불려낸 종에게 넘겨줍니다. 반면에 재산을 불려낸 종들에게는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마저 더해주지요. 또한 임금이 된 귀족은 자신의 왕권을 반대했던 사람들을 처형하는 장면이 소개되며, 비유 속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그냥 살아간다면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곧 올 것이라며 마냥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냥"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외면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문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한 미나"라는 재산은 어쩌면 우리의 "생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 즉 자신이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다가 삶을 다 소비해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에서는 공허함과 허망함,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느꼈던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고, 자신이 깨닫게 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며 생명을 퍼뜨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희망과 기쁨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나의 비유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미나의 비유'는 앞으로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느님의 나라만 가만히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의 몫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전까지 우리가 받은 생명과 사랑을 점점 불려 나가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다가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는 부도덕한 일을 하고도 승승장구를 하는 사람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으며, 부정한 일을 벌이고도 환영받는 경우가 발생하니 말이지요.

 

임금이 되어 돌아오시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왕권을 부여받기 위해 여정을 떠난 귀족을 기다리듯, 예수님이 우리의 세상에서 임금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의 말씀은 그 나라의 법이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에 속해있을 수 없게 되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시기는, 예수님이 왕권을 받고 돌아오고 계시는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과 "사랑"을 늘려갈 수 있으며, 임금이 되어 돌아온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과 "사랑"의 계명을 거북하게 여기고, 이 세상의 논리에 더 익숙해져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생명"과 "사랑"이라는 재산을 더 불릴 수 없을뿐더러,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는 것을 원하지 않게 될 테지요.

 

착하고 성실한 종


  예수님은 "생명"과 "사랑"의 재산을 열 배로 불려낸 종에게, "착하고 성실하다"라고 칭찬하십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표현은 "바보 같음"의 착함보다, 무엇이 올바르고 진정한 것인지를 알아내는 "선함"에 가까울 것입니다. 또한 "성실함"은, 자신이 옳다고 믿은 그 "선함"을 향한 꾸준한 나아감을 의미할 테지요. 

 

 착하고 성실한 종은 "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재산을 잠시 맡긴 주인이 결국에는 돌아올 것이며, 그것도 우리의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진실"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복"이 찾아옵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확신할 수 있는 투자에서는 자연스럽게 수익이 따라옵니다. 

 

욕심과 반대되다


 착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욕심을 부리는 것과 반대됩니다. 욕심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바람이 곧 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욕심은, 올바른 과정 없이 올바른 결과를 바라는 "거짓"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진실을 볼 줄 알며, 생명과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은총과 권한을 허락하십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과 사랑을 키워내지 못하고, 거짓에 사로잡혀 멈추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은총마저 거두어버리십니다. 야속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이러한 선택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사람들 역시 이익을 창출해내는 종목에 더 투자하고, 이익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종목에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습니다.

 

올바른 미래를 보다


 우리는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올바른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올바른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아낸다면, 미래에 우리가 서 있을 위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이며, 그 생명의 길은 예수님을 따를 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항상 생명과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사랑"을 더욱 키워나간 하루인지, 아니면 그대로 방치하거나 갉아먹었던 하루는 아니었는지를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짚어 봅니다. 그리하여 착하고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며, 언젠가는 찾아올 미래를 올바르게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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