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꾸짖음과 용서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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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

꾸짖고, 용서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이 구절은 죄와 꾸짖음, 그리고 회개와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꾸짖음과 용서는 어떻게 행해야 할지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죄를 짓는 일


 살아가면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오판으로 인해 남들이 죄를 짓게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우리는 흔히 "죄"를 "나쁜 짓"이라고만 여길 때가 많습니다. 만약 어떠한 일이 정말로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라면, 왜 그렇게 "죄"를 피하는 일이 어려운 것일까요?

 

 어떠한 일이 정말로 우리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다면, 우리는 그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일상생활에서도 손해 보는 거래를 기피하며,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쁜 일은 실행하기 꺼려하기 때문이지요.

 

자신만의 우선순위에 따라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을 이어나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이러한 우선순위는, 사회가 말하는 "올바른 길"에 놓여있는 우선순위와 차이가 생기기도 합니다. 개인의 우선순위가 사회적 규범, 또는 상식과 규칙이라고 부르는 큰 틀을 벗어날 때, 마찰과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정해놓은 기본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류의 첫 "죄"는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정해놓았던 선악과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개인의 욕망을 더 우선시한 선택은 죄로 이어졌습니다.

 

죽음에 이르다


 하느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음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정해놓은 큰 틀을 깨뜨리면, 생명과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곧바로 죽음에 처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우선에 두는 큰 틀이 깨져버리면서, 결국 사람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요.

 

 자신이 결혼한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의 불륜은 자극적이고 쾌락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불륜의 끝에 참된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기로 선택한 사람을 외면하고, 잘못된 우선순위를 만들어 놓은 길의 끝에는 결국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영원한 생명"은 본래의 우선순위를 따르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정해놓은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만들어갈 때, 우리는 죽음을 향하게 됩니다. 남들을 죄짓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버린 우선순위를 그들에게 강요할 때를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이 최상의 가치인 것처럼 가르치고, 내면적인 것보다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요하는 것은, 본래의 우선순위를 깨뜨리는 "죄"가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바로잡다


  그러한 의미에서 꾸짖음과 용서는 "우선순위를 바로잡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누군가가 본연의 우선순위를 어기고,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을 맨 위로 올려버리는 상황을 보았을 때, 우리는 그들의 오류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꾸짖음의 근거는 개인적인 선호가 아닌,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본래의 우선순위"에 근거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우선순위로 다시 정렬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그들의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이 바르게 자리잡지 못했던 우선순위에 있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더 나아가 용서는, 본연의 올바른 우선순위로 우리의 삶이 정렬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믿음을 청하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달라는 사도들의 간청은, "저희의 삶의 우선순위가 올바로 정렬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는 외침으로도 들립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길 만큼 "놀라운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올바른 우선순위에서 나오는 힘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모든 것의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 즉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과도 같습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은 우리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하느님을 두는 시작이 됩니다. 하느님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놓인 사람에게는 올바른 우선순위를 바라볼 수 있는 큰 틀이 점차 생겨납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큰 틀이 자리 잡게 되면,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든 선택에 놀라운 힘이 생기게 됩니다. 생명의 우선순위를 벗어나지 않는 길 위에 놓인 일이라면,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의 근원과 모든 생명의 근원을 인지하고 그 흐름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생명력과 은총은 항상 우리를 타고 흘러갈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이 가능해지도록 오늘도 하느님께 믿음을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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