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선행을 본보기로 보여주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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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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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본보기로 보여주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대 자신을 모든 면에서 선행의 본보기로 보여주십시오." 이 구절은 선행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모든 면에서 보여준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독서 전문을 읽으며 선행과 그 실천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독서 전문

선을 행하다


 오늘 독서에서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한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단순히 "착한 일"만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남들에게 "착하게 보이는" 행동을 추구하며, 그 방향이 우리의 실제 마음과 다를 때, 어려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독서에서는, "선을 행한다는 것"이 그저 착해 보이고,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특정한 기준에 부합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특정한 기준은 유일하게 절대적일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 즉 생명을 향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다


 "건전한 가르침에 부합하는 말"은 선에 대한 특정한 기준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의 기준"은 각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가치, 즉 우리를 살리는 가르침에 기준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선을 가르친다는 것은, 하느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을 알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선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모두에게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가르침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생명이 될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모두가 납득하는 기준


 그러므로 "선"은 진실을 마주했을 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그러한 기준일 것입니다. 완벽한 사례일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이와 조금은 비슷한 "기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은, 물건을 보다 싸게 사려고 할 것이며, 물건을 파는 사람은 반대로 보다 무조건 비싸게 팔려고 할 테지만,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이 형성됩니다.

 

 만약 이들에게 특정한 기준 없이 무작정 자신의 기준에만 맞추어 거래를 하려고 한다면, 경제의 흐름은 멈추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판매자도 납득하고 구매자도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의 기준이 있기에, 그 선에서 자연스럽게 가격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신중하게


 오늘 독서에서는 "신중히"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무언가에 신중을 기한다는 것은, 어떠한 기준점을 근거로 대상을 확인하고 바라보는 과정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을 "생명의 말씀" 즉, 하느님의 "건전한 가르침"에 두었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선"은 한자에서도 "올바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올바른 기준이 필요하며, 그 기준은 취향에 따라, 기호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에 근거해야 합니다. 모든 존재 중에서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하느님"이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과 가르침만이 우리의 올바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트집 잡을 데가 없다


  트집 잡을 데가 없는 건전한 말은, 이러한 올바른 기준에 근거할 때 가능해집니다. "트집 잡을 데가 없다"라는 말을 조금 더 곱씹어봅니다. 트집 잡을 데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올바른 중심"에 놓인 상태를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렬한 환호와 인정을 바라기 때문에 잘못된 "기준"을 향할 때가 많지요. 어쩌면 격렬한 환호는 선이라는 "중심"이 아닌, 한쪽으로 치우쳐진 결과에서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의 입장만을 배려하는 것도, 나만의 이익을 강조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올바른 기준과 근거"를 두며 하느님의 가르침 따라갈 때, 우리는 "선행"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의 본보기가 된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올바른 기준을 따르며 나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산을 내어주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산을 내어주시어, 우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선의 기준을 따르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우선시하였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기준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믿음과 순종은 분명, 예수님의 "자산"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소유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정해놓으신 기준을 따르는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단순히 율법과 계명에 담긴 규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에 생명이 있음을 깨닫고,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선행"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산을 물려받아,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은총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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