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성전을 다시 세우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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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벽돌과 반창고

성전을 다시 세우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성전을 허문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흘이라는 기간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성전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성전에서 쫓아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속에서, 성전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내쫓으십니다. 또한 예수님께 당위성을 물으며 표징을 요구하는 유다인들에게, 성전을 허문다면 사흘 안에 새로운 성전을 짓겠다는 말씀도 하시지요. 당시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과 선택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 이후, 예수님의 당시 행동과 선택은 훗날에 제자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었지요.

 

허물고 다시 세우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성전을 허물어라"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에 연결됩니다. 이러한 비유는, 군중에 의해 파괴된 예수님이, 하느님에 의해 사흘 안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셨음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과정은 하느님의 "성전"이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우리의 존재를 가리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도 이어집니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마음을 담고 있지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살아있는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의 존재는 "생명"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다른 것들로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성전 안에 장사치들이 자리를 잡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라는 성전


  세월이 지나면서 본래의 의미와 멀어진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성전을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들인지,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은 우리와 이웃을 살리는 것인지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을 만들면서까지 성전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쫓아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분노는 "파괴"보다 "교정"에 더 중점을 두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신 본래의 생명과 빛을 잃어가는 우리를, 하느님이 있어야 할 곳에 다른 것이 들어와 있는 우리의 마음을 교정해주십니다. 

 

다시 세우는 것


 건물을 고치는 과정을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은 이미 잘못 지어진 건물을 교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덧붙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초가 잘못 지어진 건물은 외관이 바뀐다고 하여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완전한 "교정"을 위해서는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방법을 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건물이 무너져가는 장면을 보고 "창조"를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건물을 허무는 과정은 분명 "파괴"이자 "죽음", 그리고 "멸망"의 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즉 무너짐 뒤의 세워짐은 이 과정을 몸소 증명하기 선택하신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활을 믿는 것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여러 번 지켜본 사람은,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을 보면서 새롭게 지어질 건물을 기대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반복될 수많은 죽음과 부활에서 "무너짐"와 "죽음"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워짐"과 "부활"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반복되는 부활의 체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겪고 난 다음에야, 예수님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삶의 힘든 기점들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그 일들의 참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시점에서 "무너짐"과 "파괴"를 체험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곧 주어질 "세워짐"과 "부활"을 기대하며 꿋꿋하고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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