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내가 마시려는 잔 (과정을 선택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3. 1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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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담긴 잔
물이 담긴 잔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오늘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 질문에서 이야기하는 '잔'에 대하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 잔을 마셔야 할까요? 아니면 마시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마실 수 있는 잔일까요? 아니면 마셔야만 하는 잔일까요? 다양한 질문들의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생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마시려는 잔

 복음 속 예수님께서, 우리가 '마시려는 잔'이라고 표현한 것은 무엇일까요. 복음에는 '예수님의 두 제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고로 좋다고 생각하는 결과를 예수님께 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걸어야 하는 당사자인 두 아들이 아닌 그들의 어머니가 청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빛

 두 제자의 어머니의 청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혀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 그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영광의 최고점을 말한 것일 테지요.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 영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잘 알지 못하였지요. 아마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화려한 결과만 바라보고 그 대상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얻기 위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는 놓칠 때가 많지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발레리나는 많은 주목과 부러움을 한 번에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상처투성이인 발레리나의 발은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영광의 빛은 어두운 곳에서 발할 때 더욱 강렬해집니다. 

 

타인을 위한 청

 어머니의 간청이 애틋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오늘 복음 속 어머니의 청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남을 위한다는 말 뒤에 자신의 욕심을 담아 놓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의 결과를 본인이 정해놓고 기도한다면, 분명 자신의 의도가 담긴 청일 것입니다. 지금의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타인에게 부여할 때도 있습니다. 노고는 원하지 않고, 영광만 원할 때도 타인을 떠밀기도 하지요. 이처럼 우리는 영광은 대신 받으려고 하지만, 노고는 대신 맡으려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잔

 예수님은 어떠한 결과를 향한 노고를 '잔'에 비유하신 듯합니다. 잔은 마시지 않으면서, 좋아 보이는 결과만 가로채려 하는 것은 옳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자연의 이치에도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씨앗을 심고, 식물을 가꾸지 않으면서 열매만 바라는 행위일 테니까요.

 

우리가 택하는 것

 사람들은 결과만 바라보며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그 과정을 소중히 여깁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면,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 없는 결혼이라는 결과 자체만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과정을 겪어가겠다는 선택을 할 뿐, '결과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것이다.'라는 복음 속 이야기처럼 말이죠.  따라서 우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잔"을 마실지 말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섬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

 복음 끝부분에서 예수님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닌 섬기러 왔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일러주시지요. 이를 단순히 겸손의 차원이 아닌, 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 것은 어떠한 행위의 결과입니다. 누군가의 품행과 인격이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를 섬깁니다. 따라서 섬김을 받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섬기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은 섬김의 과정을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오게 됩니다. 섬김을 받기 위한 섬김이 아닌, 섬기는 것 자체를 선택한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그 열매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