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와 양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문지기는 양을 보고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목자를 보고 문을 열어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또한, 문 안으로 양들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목자의 목소리를 따라 걷는 방법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이 구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양 우리에 들어갈 때,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목자이며,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라고 이야기합니다. 문지기는 오직 목자에게만 문을 열어주며, 그 목자만이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문으로 들어온 목자가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데리고 나간다는 점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갑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 부르면 양들은 그 사람을 피하고, 오히려 달아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이미 양들에게는,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힘이 주어져있는 듯합니다.
대체할 수 없는 평화와 행복
어린 아기를 떠올려봅니다. 사랑 가득하게 자신을 부르는 부모의 목소리를 아기는 바로 알아차립니다. 그 목소리와 함께 자라나는 아기는 자연스러운 평화와 행복을 느낍니다. 반면에 아기가 자신을 달콤한 사탕으로 꾀어내려는 낯선 사람을 만난다면 어떨까요? 달콤한 사탕에 꽂혀서 순간은 그 사람을 따라갈지도 모르나, 그 와중에도 왠지 모를 불편함은 아기의 마음 한구석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부르는 목소리와 음흉한 목적이 있어서 부르는 목소리의 차이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 또는 두려움과 같이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는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눈과 귀가 닫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인 예수님, 즉 우리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는 불편함이나 두려움, 찝찝함이나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내 안의 열쇠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보고 그 문을 열어줄 열쇠를 우리의 안에 두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어 이끌어주시듯, 우리의 서로 다른 삶과 성향에 맞게 각자의 열쇠를 마음에 두신 것 같습니다. 진짜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 수많은 도둑들이 그 열쇠를 노립니다. 누군가에게 '열쇠를 주는 것이 맞을까?'라는 망설임이 있다면, 그 선택은 일단 보류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도박이 아닙니다. 확률적으로 맞을 것 같은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선택에 있어서 혼란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조금 더 지켜보고 알아보아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인지를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심어주신 열쇠는 오직 예수님이라는 문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 문을 위해 만들어진 열쇠이기에 늘 신중하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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