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2. 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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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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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이 구절은 우리가 믿는 바와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연관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믿음과 실현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너희는 믿느냐?


 길을 걷던 예수님께 어느 날, 눈먼 사람 둘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눈먼 사람 둘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지요.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그분의 기적을 통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확실히 하고자, 그 믿음을 그들의 입으로 고백할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감기에 걸리거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습니다. 그러한 치료의 과정이 지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큰 거부감이나 두려움 없이 치료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더라도, 치유가 되지 않는 상황은 오늘날에도 발생합니다.

 

희망을 품다


 현대의 발달된 기술로도 눈먼 사람의 눈을 다시 보이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예수님을 찾아와 자비를 청하는 복음 속 눈먼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일이 예수님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그들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눈먼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 사례를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길에 희망을 두기 위해서는, 그 길에서 목적을 달성한 하나의 사례만 있으면 됩니다. 때로는 거짓된 사례로 인해 사람들이 선동되는 경우도 있지만, 진실된 하나의 성공사례는 연이은 또 다른 성공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부활 역시,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하나의 성공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리지 말라


  예수님의 기적들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퍼지자,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예수님 일행을 따라다녔지요.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눈먼 사람들을 치유해주시면서,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조금은 의아한 예수님의 이러한 대처는 진짜 "믿음"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상태를 바라보고, 자신의 진짜 마음을 바라보기보다, 남들과 비교하며 평가하는 삶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안되는가?" "저 사람도 받았는데 나는 왜 못 받았는가?"라는 질문들은 스스로의 마음과 상태를 보지 못하게 하고,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만 매몰되게 하지요. 이러한 비교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를 낳으며, 이러한 분노는 자신에게만 그 무언가를 않았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향해 솟구치게 됩니다.

 

분노, 예수님을 향하다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분노도 이러한 형태였을 것입니다. '기적을 베풀 줄 아는 당신이 왜 나한테는 그 기적을 주지 않는가?'라는 사고방식은 예수님을 향한 분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노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발생합니다.

 

 무작정 기적을 바라기 전에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에게 있는지, 또한 그 일을 이루어줄 수 있는 존재를 정말로 신뢰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그 일을 이루어주는 것은 상대의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눈먼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해야 만"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할 수"있다고 믿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선택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원한다면


 세상에서는 화려하고 멋진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가진 사람들과 그것들을 갖지 못한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그것을 지닌 상대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만 가득 해지지요. 남들과 비교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키워나가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원하고 있는가?", "그것들을 원하는 진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도 그 대상을 원하는 마음이 그대로 있다면, 그 대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면 됩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늘 남들보다 고귀할 필요도, 더 우수할 필요도 없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비"는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자비"는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비를 위해서는


 진정한 "자비"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결핍"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추하다고 생각하며 자꾸만 가리고 외면한다면, 그 결핍은 절대 채워질 수 없을 테니 말이지요. 우리가 원하는 바를 하느님께 고하고, 진정으로 그것을 주실 수 있는 분이 하느님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만, 기적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 자비가 감사함이 되고, 은총이 되어 좋은 것들을 낳을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거나 얻었더니 "행복해하더라"라는 말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행복이 될 수 있으려면, 지금 자신의 마음과 상태를 먼저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하느님께 청하며, 그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 믿는 사람에게는 분명 "그대로 되어라."라는 예수님의 기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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