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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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땅에서 피어난 새싹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오늘 복음 구절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우리가 노력한 무언가가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하느님께 인정받는듯한 기분이 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성실함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탈렌트의 비유


 오늘 복음에서는 상당히 큰 단위의 금액인 '탈렌트'를 종에게 맡기는 주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재능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탤런트'라는 점을 떠올려보니, 복음에 등장한 비유에 담긴 의미가 조금 더 풍부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저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았습니다. 타고난 재능, 태어난 배경 등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은 것들이지요. 그렇게 대가 없이 받은 것들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은, 아마도 우리의 생명일 것입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종들도 주인에게 '탈렌트'를 거저 받았습니다. 주인은 종의 신분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거금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맡깁니다. 종들에게 주어진 금액은 서로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두배로 불리면서 느끼는 종들의 보람과, 그것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끼던 주인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들이 기쁨과 보람을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는 탤런트를 그대로 땅에 묻어둔 종도 있었으니까요. 주인은 그 종을 크게 나무랐습니다. 원래 자신의 것도 아니었던 것을, 그대로 보관한 것일 뿐인데 그렇게 큰 잘못이었을까요?

 

그대로 묻어둔 이유


 우선 땅에 묻어둔 종의 말과, 주인의 대답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추측해봅니다. 탈렌트를 땅에 묻어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이러한 말을 합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데서 거두는 모진 주인이 두려워, 탈렌트를 숨겨두었습니다." 종의 말을 곱씹으며, 탈렌트를 그대로 묻어둔 이유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공교롭게도 탈렌트를 묻어놓기로 선택하였던 종은 세명의 종들 중에서 가작 '적은'양의 탤런트를 받았던 종이 었습니다. 아마도 그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 적은 양의 돈을 맡긴 주인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타인과 자신의 일차원적인 비교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마음을 먹으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주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나?', '신이 나에게 준 것도 없으면서 무엇을 자꾸 베풀라는 말인가?', '코딱지만큼 줘놓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에서는 당연히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이러한 삶에서 불행마저 느끼지요. 이러한 불행 역시 '비교'에서 찾아옵니다.

 

 신이 자신에게 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 탈렌트라는 돈 역시, 커다란 금액이지만,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것이 하찮게 느껴진 것이지요. 그러한 마음이 바로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한 마음"이라는 것을 주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악하고 게으른


 주인은 자신이 맡긴 재산을 두배로 늘려온 종들을 "착하고 성실하다"라고 표현하였으며, 자신의 재산을 그대로 묻어둔 종을 "악하고 게으르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주인은 단순히 자신의 재산을 불려서 이익을 가져다준 종들에게 칭찬을 하고,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 종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이 아닙니다. 이익이 목적이었다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맡겼을 것이라는 주인의 말은 이를 확실하게 드러내 주지요.

 

 그렇다면 주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의 재산을 늘려온 이들을 칭찬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묻어둔 이들을 나무라는 주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주인은 자신의 재산으로 살아가는 '종'들이 평생 자신에게 종속되어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큰 재산을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신뢰하는 마음을 넘어, 그들에게도 자신이 느끼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전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실함과 게으름


  주인이 맡긴 재산을 두배로 불릴 수 있었다는 것은, 주인의 재산을 마중물로 삼아서 끊임없이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종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반대로 주인의 재산을 그대로 묻어두었던 종은, 아무리 많은 양의 마중물을 부어도 물 한 방울조차 길어올 수 없는 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는 '성실함'과 '게으름'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성실함과 게으름은 우리의 생명, 즉 "자생력"과 연관되어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씨앗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씨앗에게 양분을 제공하는 땅이 필요하고, 하느님께서 붙여준 불씨가 계속해서 타오르게 하려면 장작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무언가"가 필요하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통해, 우리 스스로 기쁨과 생명을 키워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생력'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자생력'입니다. 하느님께서 잠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분의 숨결과 생명은 우리에게 영원히 허락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그 생명을 통해, 우리의 생명을 점점 키워나가야 하지요.

 

 작은 일에도 충실하였던 착하고 성실한 종에게 주인은, 큰일을 맡기기로 결심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생력'이 생긴 사람은 큰 일을 부여받는 또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탈렌트를 두배로 불리면서 늘어갔던 건 단순히 종들의 돈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경험, 기쁨, 보람, 주인에 대한 마음, 그리고 자신감 또한 함께 늘어났지요. 그들은 그렇게 주인이 그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자생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악했던 이유


  이렇게 바라보니, 왜 탈렌트를 묻어두었던 종을 '악하다'라고 표현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자생력을 주어, 그들이 자신처럼 재산과 생명을 점점 불려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종'이 아닌, '친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그러한 주인의 마음을 무시한 채, '악한 종'은 "저는 자생력 따위는 필요 없고, 평생 당신이 주는 것만 먹고 마시며, 시키는 일만 하는 종노릇이나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 격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 이유를 자신의 나태함이 아닌, 모진 주인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속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종은 그대로 묻어져만 있는 씨앗은 죽어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진 자는 더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는 말은 신의 포악한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수 없음을 알려주는 말씀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평생을 하느님의 은총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을 그대로 두기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언가를 통해 기쁨과 생명을 키워나가는 연습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가 되어가기를 꿈꾸는 것이지, 우리를 평생 보필해주어야 하는 하느님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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