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기에 더 행복하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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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
빛을 내는 전구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에


 오늘 복음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의 행복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끝자리에 앉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은 일화가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에 앉기 위해, 자리를 고르는 장면이 펼쳐지지요. 예수님은 이들을 보면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남들이 권하기도 전에 윗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그 자리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왔을 때 자리를 내주어야 하지만, 스스로 끝자리에 앉는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맞게 자리를 높여줄 일만이 생길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는 '겸손'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히 겸손을 지향하라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지요. '겸손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끝자리를 고집한다면, 끝자리는 윗자리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겸손을 '명예'와 연관 짓지 않고, 우리의 '행복'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니, 끝자리에 앉는 것이 무언가를 바닥부터 시작하는 상황을 떠오르게 합니다.

 

모든 것을 생략하고


 우리는 행복을 향한 여정에서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이루어내며, 남들보다 더 높이, 더 빨리 행복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요. 아마도 그러한 마음이, 세상에 초대받은 우리가 남들보다 더 윗자리에 앉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은, 끝자리에 먼저 앉는 것이 우리의 영광과 행복을 위한 현명한 자세라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예전의 만족스러웠던 자신의 상태를 떠올려보면, 지금 자신의 위치가 불만족스럽고 합당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끝자리에서, 즉 처음부터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는 아마도,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무언가를 낭비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여기서


 현대에는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험생들은 수험기간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지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점점 불안해합니다. 얼른 자격증을 취득하여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앞으로 달려가는 남들에 비해 자신은 멈추어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보다, 남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만 집중한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더욱 힘겨워질지도 모릅니다.

 

 사실 윗자리와 끝자리의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입니다. 끝자리에 앉았다고 그 사람의 존재가 가장 바닥에 있다는 것은 아니며, 윗자리에 앉았다고 그 사람의 존재가 가장 위대한 것도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자신이 늦었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것도, 그 기준을 남들에게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다


 자리의 높고 낮음은 초대받은 이들이 서로를 비교하면서 생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상석'이라고 말하는 자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일 뿐이지요. 우리는 정말로 친하고 편한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굳이 자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큼은 비교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지요. 누군가를 경쟁 상대로, 미움의 대상 혹은 질투의 대상으로 여길 때, 우리는 앉아야 할 자리의 위치에 얽매이게 됩니다.

 

 모순적이지만 어떠한 모임에서 가장 끝자리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 모임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자만심, 또는 자격지심으로 자신과 남들을 줄 세우는 그 전쟁터에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의 평화와 행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초대하는 이의 자세


 예수님은 초대받은 이들뿐만 아니라, 초대를 하는 이들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십니다. 자신에게 보답을 할 수 있는 이들을 초대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보답을 할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더 행복한 길이라는 말씀이었지요. 예수님은 그렇게 '베풂'에서 오는 행복을 키우는 법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누군가의 대가를 기대하고 행한 베풂에서는, 자신의 행복이 그 대가의 값어치에 가려지게 됩니다. 심지어 스스로 기대했던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행복 대신에 상대에 대한 서운함과 미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싹트게 되지요. '베풂'을 통해 기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면,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


 사람은 생각보다 자극에 영향을 쉽게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답, 혹은 대가에도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돈을 받으면서 하는 것은 '일'이지만, 돈을 주면서 하는 것은 '취미'이다. 오히려 우리는 대가를 받으면서 하는 행동보다, 무언가를 주면서 하는 행동에서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여가와 직장을 구분하는 것도, 자신들의 취미영역이 어떠한 대가로 인하여 갇혀버리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일 테지요.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팁을 주십니다. 우리의 행동의 동기를 외부의 어떤 보답에 두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에 두는 것,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만큼 주어질 것임을 믿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행복'이라는 불빛과 '기쁨'이라는 샘물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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