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있는 종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25.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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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는 사람
농사 짓는 사람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주인이 돌아오는 때는 언제인지, 그리고 그렇게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깨어 있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주님이 오시는 때를 모르는 우리가, 주님을 제때에 맞이할 수 있으려면 늘 깨어있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뒤이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집을 지키는 사람의 비유는, 우리가 깨어있는 것이 우리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임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표현은 고산지대에서 생기는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 높은 곳에 사람이 올라가면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체온이 떨어지게 되며 졸음이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잠이 들게 된다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지요. 잠에 빠진 사람의 활동성은 줄어들게 되고,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영영 깨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깨어남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생명을 받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던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상황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결국 자신의 존재와 하느님의 존재를 향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세상의 자극들에 무뎌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멈추게 되었고, 다들 원래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깊은 잠'을 미리 청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아가다가,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깨어남'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에는 깨어있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깨어있기 위하여


  수험생들은 잠에서 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는 합니다. 커피를 마시거나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깨어있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해봅니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극에 무뎌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다던가, 눈앞의 보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점점 우리의 머리와 마음은 깨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이 살던 하루였더라도, 무료하게 보낸 일상이었더라도, 오늘 있었던 자극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잠에 빠져 예수님을 놓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오는 날


  주인이 오는 날, 즉 예수님이 다시 돌아오는 날은, 죽음의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과거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최대한 늦게 받는 것을 현명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세례를 받게 된다면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없기에, 깨끗한 상태로 하느님 앞에 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지요. 만약 주인이 오는 날을 우리가 죽는 시점에만 국한되어 받아들인다면, 지금도 이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옳은 일일 테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비유를 살펴보면, 주인이 오늘날을 준비하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죽을 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자기의 식솔들을 종에게 맡기고 떠난 주인은, 제때에 양식을 식솔들에게 나누어주는 종을 충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보고 있던 보고 있지 않던, 필요한 때에 식솔들에게 양식을 전해주는 것이 주인이 종에게 맡긴 역할이기 때문이지요. 주인이 돌아올 날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식솔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모든 것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체와 영혼을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은 원래 하느님, 즉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잠시, 세상에 나온 우리에게 맡겨둔 것이지요. 우리가 지닌 어떠한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 힘만으로도 그것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의 존재마저 하느님에게서 온 하느님의 식솔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 식솔들을 잠시 맡긴 것일 뿐이지요.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 동안, 그 식솔들에게 양식을 제때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난다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역할을 알아차리고 행하는 것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식을 제공하다


  따라서 우리는 '양식', 즉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에게도 제공해야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를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려주어야 할 하느님의 말씀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이야기하는 공허한 외침이 아닌, 정말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쁜 소식이, 우리가 전해야 할 양식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맺은 우리의 열매는, 나 자신과 이웃들의 훌륭한 양식이 됩니다.

 

 주인이 곧바로 오지 않자,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며 술꾼들과 어울리는 종은, 이웃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종을 의미합니다. 공허함을 잊고자, 쾌락과 욕구만을 채워 넣는 것은, 양식이 필요한 영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들에게 정말로 배부를 수 있는 양식을 주지 않고, 진실을 가리며 환상 속에서만 살게 하였다면, 지금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일상의 자극들에 집중하며 깨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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