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면 열린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서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문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복음 전문을 살펴보며, 오늘 말씀 구절을 통해 무엇을 말씀해주시려고 하는지를 생각해봅니다.
복음 전문
원한다면 받는다
오늘 복음은 유독 기쁜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청한다면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주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조금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슈퍼맨인 줄 알았다는 누군가의 회고가 떠오릅니다. 그 사람은 점점 자라나면서 아버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있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아버지는 자신이 생각하던 슈퍼맨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청하면, 들어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은 온전히 믿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실패의 경험들이 떠오르며,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과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진짜 원하는 것
그러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 하느님이 우리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 정말일까? 실패라고 생각한 그 경험이 정말 실패였을까?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까요? 당시 우리가 바라던 것이 정말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나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또 다른 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탕 줄게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한 아이에게 낯선 이 가 이렇게 묻습니다. "꼬마야, 아저씨가 사탕 줄까?" 아이는 평소 사탕을 좋아했기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입니다. 그러자 낯선 이는 대신 자신의 차에서 짐 하나만 꺼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꼬마는 그러겠다고 말하여 낯선 이를 따라나섭니다. 아이는 사탕을 원하지만, 사탕은 그곳에 없습니다. 사탕을 바랐지만, 그곳에는 위험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전화기 너머로 듣고 있던 아이의 엄마는,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소리칩니다. 아이는 좋아하는 사탕도 먹고, 남을 도와줄 수도 있는 멋진 일을 화내면서까지 말리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선택 이후에 다가올 위험들을 알고 있기에, 아이의 행동을 막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타임머신을 탄다면
우리는 흔히 '타임머신을 타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그 말인즉슨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요소들로 인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었던 경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손쉽게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현실을 그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한 번의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상황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청하고, 찾고, 두드린다면
만약 영화 속 주인공처럼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미래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에게 진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 속 상상일 뿐이지만, 사실 현실에서도 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또 다른 나
하느님은 우리를 만들었고, 키우시며,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아신다고 배웠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그러한 존재라면, 하느님을 '또 다른 나'라고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진정한 나"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존재인 하느님에게 무언가를 청한다면, 어떠한 마음으로 그러한 청을 하였는지를 하느님은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한, 방법과 방향을 일러줄 테지요.
청했는데 못 받았은데
청했는데도 불구하고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내놔라 하면 가져다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한 어린아이와 부모를 상상해봅니다. 이 어린아이에게는 얼마 전 동생이 생겼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동생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치중되는듯하자, 아이는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서러움에 못 이겨, 부모님께 동생을 다른 집으로 보내라며 보채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은 그러한 아이를 보며, "사랑과 관심을 원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동생을 버리지 않고, 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선택을 합니다. 아이가 겉으로 청한 것은 동생이 사라지는 것이었지만, 진정으로 바란 것은 자신을 향한 사랑과 관심임을 부모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
그토록 우리를 우리보다 잘 아신다면, 삶에서 닫힌 문을 마주하지 않도록, 활짝 열어두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행위 없이, 자동으로 열리는 문만을 걸어간다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문 앞에 서자마자 바로바로 문이 열린다면, 그 뒤에 어떠한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라'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더 나아가, 문을 두드리는 행위와 하느님께서 문을 열어주는 행위는,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까꿍"놀이를 연상케 합니다. 우리의 관심과 어떠한 행동이 수반되어야, 원하던 것을 마주했을 때의 기쁨과 감동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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