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보다 더 큰 사람
오늘 복음 말씀 구절에서는 '요나'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요나'라는 인물보다 더 튼 사람이 여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또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지,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생각해봅니다.
복음 전문
요나 예언자의 표징
복음 속 예수님은 예언자 "요나"와 그의 "표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또한 악한 세대라고 불리는 이 세대가, 계속해서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만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요나의 표징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제1독서에서 소개하는 요나 이야기
오늘 독서 말씀은 요나의 표징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나 예언자는 '니네베'성이 40일 후에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러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분노를 멈추기 위해서 기존의 악행에서 돌아서는 선택을 합니다. 그 결과, 하느님은 니네베 성을 벌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표징의 두 방향성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표징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합니다. 그 두 가지 표징 유형을 '당근'과 '채찍'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때로는 당근과 같이, 어떠한 대상이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을 때,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북돋아주며 잘 가고 일러주는 표징이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표징을 통해,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며,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용기와 지혜, 그리고 힘을 주십니다.
반면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른 방향의 표징을 일러주십니다. 잘못 걸어가고 있는 그 길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그 길의 끝에는 죽음과 멸망이 있음을 일러줍니다. 그렇게 채찍과 같은 하느님은 표징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당근만을 바랄 때
하지만 우리는 특정 방향의 표징만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올바른 길을 걷는 것보다, 지금 가고 싶은 길에 대한 확신과 안심을 더 추구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그 일이 자신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궁금해하기보다, 당장의 욕심이 이 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더 꽂힐 때가 있습니다.
악한 세대에게는
예수님은 악한 세대에게 '너희들은 요나의 표징만 허용된다'라는 식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제멋대로 살아가며, 잘못된 길에 빠져 죽음이라는 결말로 달려가는 이를 당근으로 살릴 수는 없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서,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어서 빨리 알아차리게 해야 할 뿐입니다. 오직 그러한 방법만이 그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길을 응원해주거나, 어설프게 지원해준다면, 그 사람을 망치고 해치는 것에 동조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요나보다 더 큰 예수님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요나보다 더 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요나는 사실 "예언자"에 불과하였습니다. 40일 후 멸망할 운명을 듣고 전할 수는 있었지만,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없었습니다. 단지 요나는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외치는 역할만 할 수 있었을 테지요. 반면에 예수님은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줄 수도 있는 재판관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존재가 직접 일러주며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이유는, 그 대상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고자 함일 것입니다.
일상 속 예언자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형태의 예언자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의 일상에서도 예수님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시는지 귀 기울여 봅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파멸을 예언하는 공포의 소리가 아닌, 지금이라도 잘못된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음을 깨닫는 기쁨의 소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라도 그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면, 우리는 분명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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