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법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1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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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깨끗한 물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법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이 구절은 우리의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과, 깨끗해지는 것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자선과 깨끗해짐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겉과 속


 복음에는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바리사이는,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사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시고 바리사이에게 이러한 말씀을 건네시지요.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바리사이는 존경을 받던 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서, 의로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었으니 말이지요. 아마도 바리사이들은 보이는 그들의 태도와 자세만큼은 완벽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티끌 하나 없이 빛이 나는 그릇과 접시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겉모습과 달리, 속마음은 불평과 분노, 짜증과 미움, 시기와 질투, 그리고 교만과 오판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겉모습을 깨끗하게 하고, 정갈하게 하며, 매일같이 다듬어 보지만, 마음속에 품는 생각과 감정에는 소홀히 하는 그들의 모습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획


 어쩌면 예수님은 자신이 식사 전 손을 씻지 않을 경우, 바리사이가 거슬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의 마음에서도, 보이는 것을 신경 쓰는 그들의 습성이 담겨있음을 알고 계셨을 테니까요. 어쩌면 예수님은 그러한 바리사이의 상태를 일깨워주기 위해, 그 초대를 허락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속에도, 바리사이의 습성과 같은 마음이 혼재되어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고 싶기에, 자신의 경제력과 여유로움, 그리고 인간관계와 재능, 심지어 독실한 신앙심마저 드러내고자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진짜 "행복"이 자라나고 있지는 않을 때가 더 많지요.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요소들은 사실, 우리의 마음을 위한 것보다 남들의 시선을 위한 것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깨끗함을 위해, 보이는 행동과 자세만을 신경 썼던 바리사이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보이는 깨끗함을 추구하던 바리사이에게도, 보이는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도, 진짜 깨끗함과 행복을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주다


 예수님은 바리사이를 비난하기 위해,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리사이가 선택한, '겉의 깨끗함을 우선시 여기는 길'에는 "생명"이 없음을 알려주고자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사이가 진정으로 깨끗해지기를 바란다면,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한 속마음을 먼저 게워낼 수 있어야 함을 알려주신 것이지요.

 

 우리의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예수님의 처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선을 베푼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선한 것을 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겉으로 베푸는 자선은 경제적인 원조, 친절한 태도, 위로의 말, 물리적인 도움, 이야기를 들어줌, 함께 있어줌 등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속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은 우리의 마음, 생각, 즉 내면적인 선택을 통하여 그들에게 선한 것을 베푸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상대로 인해 불편해지다


  누군가의 행동으로 우리가 불편해지거나 불쾌해졌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상대방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보게 된다면, 내면에서는 그 사람을 향한 미움과 분노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사람을 향해 미움과 분노 대신, 선한 것을 전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이, 잘못한 사람을 합리화하고, 인정해주면서 무작정 이해하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상대의 잘못된 태도를 보고 "그래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행동일 뿐일 테니 말이지요. 상대의 잘못된 태도가 '정말로'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는 과정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상대를 향한 분노


 상대방을 향한 분노는, 그 사람의 행동 자체에서 온다기보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불편해진 우리의 마음으로 인해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불편해지고 불쾌해진 마음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누군가의 태도는 우리의 분노를 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저주하며 십자가에 못 박는 군중을 향해 분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과 말이, 예수님의 존재를 해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은 우리의 존재를 창조하시면서 겉과 속을 모두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은, 우리의 허락과 선택 없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셨지요.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오실 때는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타인의 잘못된 모습을 우리의 내면으로 끌고 들어오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은 "생명"을 향한 길


 우리는 위험한 낭떠러지로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비웃거나 험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안전을 염려하며 달려가 구해주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지요. 그러나 그 사람이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완고하다면, 그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낭떠러지로 향한다는 길을 걷고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내면으로 그 사람을 따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약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 즉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겠지요.

자선의 진정한 목적


  속에 있는 것들로 자선을 베푸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생명의 길에 올려놓는 것과도 같습니다. 자선을 단지 "내 것을 덜어서 남들에게 퍼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자선은 "멍청한" 선택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깨끗하게 닦는 행위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생명의 길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속에 불편하거나 불쾌한 마음이 남아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으로 자선을 베풀며 그것들을 게워내 봅니다. 하느님께서 속에 있는 것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속에 있는 것들에게도 생명의 힘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는 우리의 말과 행동만큼이나 커다란 힘이 있습니다. 타인의 모습으로 인해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품는다면, 결국 망가지고 다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의 주인이기에, 예수님은 그것들을 게워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좋은 것들로 가득 찬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말과 행동도 좋은 것들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푼다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올바른 과정이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듯, 우리의 내면이 아름다워질 때, 우리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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