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0. 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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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열쇠
꽃과 열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오늘 복음에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리는 것은 무엇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열 사람의 나병 환자


 복음에서는 열 사람의 나병 환자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던 예수님을 보고, 스승님이라 부르면서까지 자비를 청했었습니다. 자비를 청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가서 사제에게 몸을 보여라."라는 방법을 일러주시며, 치유의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지요.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방법대로 하자, 열 명의 나병 환자들은 나병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단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다시 찾아와,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표현하였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바람을 누군가에게 간절히 청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일들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는,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과정들을 외면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변화이 공로를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만 돌리며 살아가기도 하지요.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다."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더불어 "화장실을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라는 말도 함께 떠오릅니다.

 

은총을 소모품처럼


 때때로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과 은총을 마치 "소모품", 또는 '일회용품'처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아프면 다시 청하면 되고, 모자라면 다시 요구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며, 하느님의 이끄심과 도우심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진정한 감사와 행복과는 멀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나병 환자들에게 나병의 치유는 마치 꿈과도 같은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평생을 바라던 유일하고도 간절한 목적이 바로 나병의 치유였을 테니 말이지요. 하지만 정작 나병 환자들의 치유는, 감사와 믿음이 아닌 생각하지도 않았던 욕심과 환상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갈증


  새로운 상태가 되어,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처했던 과거의 상황을 무시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과 은총을 당연시 여기게 된 사람은, 행복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일 뿐, 또다시 갈증에 허덕이게 됩니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은총을 내려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행복은 우리의 마음이 좋은 것들로 풍족해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예전에 비해 더 채워졌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삶에서, 기쁨과 행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생명과도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우리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의를 넘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태가 아닌  존재의 변화


 나병 환자들이 병에서 치유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진정으로 변화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구원"은 "결국 죽는 존재"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죽어 없어질 존재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바로 "존재의 변화"가 구원을 받게 된 변화인 것이지요. 상태의 변화가 항상 존재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열 사람의 나병 환자들 중, 감사를 표현한 오직 한 사람만이 존재의 변화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미용실에서 머리 스타일을 바꾸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가 바뀌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가 아팠다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가 바뀐 것도 아닐 테지요. 하지만 이러한 상태 변화가, 외모에만 집착하던 시람이 외모를 개의치 않고 내면을 중시하는 변화로 이어지고, 돈을 우선시 여기던 사람이 돈보다 가족과 이웃을 더 소중히 여기는 변화로 나아간다면, 가히 "존재가 변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와 믿음


  "감사함"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무엇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더 나아가 "믿음"은 우리가 집착하던 무언가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지요.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하여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감사"와 "믿음"은 그렇게 우리의 존재가 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밑거름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한 사람이 치유라는 상태 변화 이후, "감사"와 "믿음"을 통해 존재의 변화를 이룩하였음을 공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는, 그 사람의 변화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상태의 변화가 존재의 변화로 이어진 그 사람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구원으로 이어지다


 예수님께서 감사함을 표현한 그 사람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오로지,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기적"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치유라는 상태 변화를 겪었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변화가 하느님의 "기적"과 "은총", 그리고 "이끄심"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았더라면, 감사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말이지요.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느님의 이끄심과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믿음이란, 이러한 받아들임을 뜻하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과 구원은 오로지 "감사함"을 통해서만 완성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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