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위에 계시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입니다. 위에서 오신 분은 누구이며, 또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봅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위에 있다"라는 표현에 대해 조금 더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얼마나 위에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 즉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을, 혹은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각자만의 "신의 위치"를 정해놓을 때가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 위에 계시다고 표현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분 위에 몇 가지를 더 올려놓고는 합니다. 무언가를 두려워할 때, 혹은 무언가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가득해질 때가, 예수님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어닥치는 파도와 바람을 두려워합니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무언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절망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그 모든 것 위에 있음을 참으로 믿고, 또 알고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를 뒤흔들 수 없을 것입니다.
참되심을 확증하다
복음은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양한 방법으로 증언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이웃의 목소리로, 때로는 현실의 상황들로, 때로는 눈앞에 닥친 시련들로,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갑자기 마주한 사건들로 말입니다. 예수님의 그 증언들은 하나같이 하느님, 즉 우리의 참된 행복을 향해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은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을 믿고 따르라'가 아닌, "참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안내와도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우리의 시각대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예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당장은 열리지 않을 시야겠지만, 위에서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안내를 믿고 따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안내를 끝까지 따른 사람만이, 하느님의 안내가 정말로 참되었구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다
예수님은 위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 말인즉슨 위에서 세상을,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고 내려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땅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위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을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지도, 또는 내비게이션을 떠올려봅니다. 이 둘 모두, 위에서 바라본 시야를 우리에게 제공해줌으로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음성과 지도 속 그림들을 지표 삼아 여정을 떠납니다. 가끔 오류가 발생하는 기계에게도 이러한 믿음을 주는데,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의 안내는 정작 무시해버릴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존재함을 인정해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궁극적인 행복으로 안내하기 위해 오신 분이시며, 그분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면 결국에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 요한복음 3장 3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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