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4. 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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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푸른 하늘

위로부터 태어나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입니다. 이 말씀 구절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조금 더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와 같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미 태어난 우리들이 어떻게 또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영에서 태어나다


 예수님은 자신이 위에서부터 왔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위로부터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뒤이어 말씀하신 내용을 살펴보면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자신이 불고 싶은데로 부는 바람이 영에서 태어난 이와 같다고 말씀하시지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영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제자 니코데모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여쭈어봅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와서 하늘로 돌아가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으라고 말씀해주시는 듯합니다. 그분의 증언, 즉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례와 삶을 살펴보며, 우리가 하늘에서부터 왔고, 또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나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안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이며, 또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커다란 발디딤일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상황과 인연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전부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하느님에게로부터 왔음을 믿고 알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 부는 바람이 무엇을 위해 우리를 스쳐가고, 또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육체와 영혼


 우리는 이미 육에서 태어난 경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눈을 뜬 세상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적응하며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 과정에서 육적인 것, 즉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찾아옵니다. 그 불안감은 자신을 '세상 속 하나의 부품'으로 느끼게 하는 더 큰 두려움과 공허함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점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해질 때, 우리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육과 영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사라질지는 알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는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육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영혼"의 출생지와 그 종착지는 우리에게 늘 고민거리로 남아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들어 올려진 구리뱀


 구약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 여정에 등장하는 구리뱀 이야기가 있습니다. 뱀에 물려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을 낫게 해주는 유일한 치료책으로, 하느님께서는 들어 올려진 구리뱀을 쳐다보는 방법을 일러주십니다. 예수님도 이때의 구리뱀처럼, 우리들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들어 올려지셨습니다. 구리뱀을 쳐다보고 낫게 된 사람들처럼, 뱀에 물려 괴로워하며 방황하는 우리 역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 치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며 방황하고 있다면, 아마 지금은 우리를 위하여 들어 올려진 예수님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 요한복음서 3장 14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