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11. 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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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떠오르는 태양

목숨을 살리려면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얼핏 듣기에 이 구절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숨을 보존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목숨을 잃는 사람이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사람의 아들의 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멸망이 찾아왔었던 노아의 때를 분명하게 언급하시며,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날에 대해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에 늘 "죽음"과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정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날은 분명 찾아오기 때문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종말"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시지만,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항상 말씀해 오셨습니다. 멸망과 죽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 "생명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함에 놓여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죽음과 종말은 분명, 부활과 영원한 생명보다는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진짜 목숨


 성경에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다양한 비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멸망"과 "영원한 생명"은 우리의 "진짜 목숨"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구분해줍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사례와 롯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목숨이 있다고 "착각하는 곳"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생명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가 점점 더 성장한다는 것이며, 나아감을 포기하고 멈추어버리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상태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생명의 여정을 떠나며 두고 온 것들을 되돌아보고, 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얽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죽음을 향하는 선택과도 같습니다.

 

데려가고, 버려둔다


 사람의 아들의 날, 예수님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무나도 참담하고 야속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사실, "죽음을 선택한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시선일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이 불행의 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숨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목숨이 없는 곳에서 목숨을 찾는 방황을 멈추고, "진짜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종말이 두려운 이유는 "생명의 길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대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무지함"에서, 또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무력함"에서 나오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과 멸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걷고자 하는 방향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라고 일러주십니다.

 

목숨이라고 여기는 것을 중심으로


 개미의 군집을 관찰해보면, 개미들은 모두 "여왕개미"의 지시를 받으며 그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산란능력, 즉 "생명력"을 지닌 여왕개미가, 그 군집의 "목숨"과도 같기 때문인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목숨이라 여기는 것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기에, 그곳을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며 살아갑니다.

 

 돈을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을 위하여, 돈 때문에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어떠한 신념이 자신의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신념을 향해 삶을 바치기도 하며, 지식을 목숨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탐구하는 것에 평생을 투자하지요. 하지만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진짜 생명은 그것들에 있지 않습니다.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예수님은 이처럼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우리의 진짜 생명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을 전해주십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는 말씀은, 목숨이라고 여겼던 무언가를 잃어보면서, 사실 "진짜 우리의 목숨"은 그곳에 없었음을 깨닫게 되는,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게 되는 과정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진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같은 맷돌질, 즉 같은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면서도 "무엇에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지에 따라" 생명의 방향이 달라짐을 일깨워줍니다. 즉 세상에 우리의 목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남는 선택을,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 우리의 목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따르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을 두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지보다 "어디에 마음을 두는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목숨이, 그리고 자신의 생명력이 온다고 판단하는 곳에 마음을 둡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자각시켜주는 것 같은 곳에 마음을 두며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곳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나오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간혹 자신의 생명이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고 나누어주신 우리의 생명이, 마치 다른 곳에서부터 나오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날"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멸망시키는 날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생명이 어디에서 오는지가 드러나는 "진실의 날"일 뿐이며, 강렬한 태양이 떴을 때 뿌리를 내리지 않은 씨앗들은 말라버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치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목숨을 내놓는 선택"은 그곳에 우리의 존재와 생명이 놓여있지 않음을 인지했을 때 가능해집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은 단순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혹은 그 일에 의해 우리의 존재가 흔들릴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하느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때, 생명이 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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