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1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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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혼인 잔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는 것과 선택된다는 것은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예수님께서는 오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다."라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다양한 방법으로 비유하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늘나라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통해, 그 비유를 듣고 있는 대상이 지녀야 할 자세를 말씀해 주시지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군중들도 아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스스로를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백성의 종교적 지도자로 발탁된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그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냐'는 생각이 팽배하여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실된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 그리고 그것에 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혼인 잔치에 초대된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은 자신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성대하게 준비하였으나, 이미 초대를 받았던 이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초대를 받고도 참석하지 않는 이들이 많자, 임금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데려와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분명 혼인 잔치에 누군가는 먼저 초대를 받았었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다른 이들보다 먼저 하느님의 자취를 느꼈기에,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는 받았으나, 혼인 잔치에는 핑계를 대면서 참석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악하다고 판단하는' 즉 자신들보다 '못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도 임금의 초대가 전해집니다.

혼인 잔치를 진행하던 임금에게는 초대를 받는 당시의 모습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초대를 받은 당시의 모습보다, 혼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더 중요시 여겼을 테니까요. '혼인 예복'은 참석자의 자세, 그리고 마음가짐과 직결됩니다. 자신이 초대받은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임금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또 그 자리를 소중히 여겼다면, 자신이 입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리고 잔치에 걸맞은 옷을 입고 잔치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마음가짐을 바라보다


부르심과 선택이라는 단어는,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의 연장으로도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타고난 무언가와 같은 운 적인 요소로 다가오기도 하며, 하느님의 선택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메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성전에 적은 양의 동전을 봉헌하는 과부의 모습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과부가 낸 돈은 굉장히 적은 양이었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그 과부에게는, 자신이 지닌 대부분의 것을 봉헌한 셈이었지요. 예수님은 그 광경을 보며, 과부가 봉헌한 것이 정말 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누군가의 마음을 다른 이와 비교하며 측정하지 않고, 그 사람의 몫을 다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바라보시는 것 같습니다.

부르심과 선택


누군가는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하느님의 잔치에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지만, 하느님의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거나 미루고 있을 수도 있겠지요.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그 부르심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꼭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악하게 살았든, 선하게 살았든 간에 우리의 자격을 따지지 않고 하느님은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라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수석 제자였던 베드로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예수님과 하늘나라에 들어갔던 사람은, 당시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만 내려지던 십자가형을 함께 받으며 죽어가던 한 강도였지요. 예수님께 자신도 함께 데려가 달라고 말하던 그 강도에게는, 우리가 납득할만한 자격이 있었던가요? 하느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자격을 보고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 부르심에 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최종적인 하느님의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혼인 예복을 입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우리가 초대된 혼인 잔치에 걸맞은 예복을 입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혼인 예복은 혼인 잔치에 걸맞은, 자신의 가장 좋은 의복을 의미할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자신이 참석하는 혼인 잔치가 소중하게 느껴질수록, 그날의 예복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힘, 그리고 정신과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기준을 다른 누군가에게 두기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몰입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말씀하시지요. 혼인 잔치에 참석하면서 우리는, 잔치에서 남들보다 튀기 위한 예복을 입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드러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잔치에 참석할 뿐이지요.

혼인잔치는 그 잔치의 주인공을 축하해주기 위한 자리입니다. 진심으로 그 대상을 축하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자세에서도 그 마음이 드러납니다. 만약 우리의 삶 속 어느 순간에서, 하느님의 부르심, 즉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기억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조금씩 입어나가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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