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양을 먹이로 삼는 목자?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1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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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을 업고 있는 소년
동생을 업고 있는 소년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는 말씀은 어떠한 의미일지,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독서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독서 전문

독서 전문
독서 전문

자기만 먹는 목자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에제키엘 예언자는, 자신의 배만 불리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언급합니다. 양들을 보살펴야 마땅할 목자가, 자신의 안위만을 채우는 상황을 비판하면서 말이지요. 또한 에제키엘 예언자는, 언젠가 '사람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그러한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거슬러 예언할 것이며, 직접 목자가 되어 양들을 이끌어주리라고도 예언합니다.

이러한 에제키엘의 예언은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위해, 수련하고 단련하지만, 정작 주변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깨닫게 된 하느님의 어떠한 가르침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성장과 정화에만 몰입하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었을 테지요. 실제로 훗날에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율법은 철저하게 지키지만 이웃은 외면하는, 바리사이들을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형제와 자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며, 서로를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일터에 나가고, 집에는 형제자매만 있는 상황을 떠올려봅니다. 부모님의 뜻과 사랑을 가장 먼저 알게 된 형제 혹은 자매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잠시 채우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나머지 구성원들을 위하여 부모님의 뜻을 실천하며 부모님을 기다리기도 하지요.

부모의 뜻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된 아이를, '맞이'라고 표현해본다면, 맞이는 배가 고파하는 다른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먹을 것을 준비하여 나누어줄 것입니다. 만약 맞이라는 아이가, 음식을 숨겨두고 자신만 배부르게 먹는다던가, 아이들의 음식마저 빼앗고, 부모님의 이름을 가장하며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면, 그 맞이는 더 이상 맞이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잘못된 종교 지도자의 모습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자신이 조금 먼저 깨닫게 된 무언가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빈번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하느님에 대한 '정보의 차이'에서 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높이기 위하여, 그러한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할 때도 많았습니다. 종교의 힘은 함께 바른 길로 가기 위함이지, 타인을 자신의 종으로 삼기 위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지요.

당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타인과 자신을 극명하게 구분하는 시선을 고수하였습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타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기도 하였지요. 타인을 구원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거나, 부를 축척할 수 있는 착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빈번하였습니다. 그렇게 종교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과, '없는 자'들을 지배하는 무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문제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종교를 막론하고, 자신이 누군가보다 하느님, 혹은 신에 대하여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타인을 조종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만약 어떠한 지도자가 그러한 정보의 차이로 타인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입니다. 누군가가 목자를 자처한다면, 그 목자의 역할은 양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닌, 양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맞이가 되려면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배하고, 강요하고, 억압하는 사람이 아닌, 섬기는 사람 만이 형제자매 중 맞이가 될 수 있으며, 목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목자는 양들을 먹이는 사람이지, 양들을 먹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세상 사람들은 맞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맞이'로 예수님을 보내셨지요. 우리에게는 그렇게 든든한 힘이 되어줄, 부모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큰형이자 큰오빠인 예수님이 생겼습니다. 부모의 예쁨을 받기 위하여, 형제자매를 자신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던 다른 맞이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주면서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기준점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누군가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우리는 그 상대가 양의 탈을 쓴 이리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그 사실을 구별하기 어렵다면, 항상 우리의 곁에서 돌보아주시는 예수님을 떠올려야 하겠지요. 그분이 어떻게 사셨으며, 어떠한 말씀을 하셨고,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였는지를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먹이'로 삼는 지도자들을 대적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착취당하고 있음을, 지배당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우리는 '눈앞의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말씀'을 통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점은 눈앞의 상대가 아닌, 우리의 안에서 함께해주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누군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때때로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도, 우리의 삶에서 늘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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