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다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8. 2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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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학생들
선생님과 학생들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다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겪고 있는 어떠한 관계들을 구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으며, 올바른 관계에 대하여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모세의 자리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모세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모세의 자리'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당시 핍박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이끌고 나오는 여정에서, 계속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백성들이 가야 할 길을 말하기도 하였지요. '모세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길의 방향을 외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 역시 말로써 하느님의 가르침과 뜻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행실은 그 방향으로 향하여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지요. 

 

괴리감과 어려움


  누군가가 말하는 것과 실제로 살아내고 있는 삶이 다르다면, 괴리감이 느껴질 것입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자신만을 외치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그 괴리감은 더욱 커지게 되지요. 그들의 태도가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신앙에 대한 불신과 반감만이 자라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부분을 미리 알고 계셨듯이, 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우리들의 확실한 태도를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자리'를 자처하는 그 지도자들이 말하는 것은 지키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쉽고, 말처럼 살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감안하더라도, 말로만 하느님을 외치는 사람을 외면한 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왜 이렇게도 어려운 일을 우리에게 시키시는 것일까요?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


  언젠가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선인들에게 전해줄 재산을 보관하기 위해, 악인들을 잠시 이용하기도 한다는 말이었지요. 이 말을 떠올리고 나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는 어떠한 말씀이 누구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지보다, 계속해서 전해져서 그 말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에게만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졌다면, 우리가 오늘날 들을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극히 적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위선을 위해 외치던 하느님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의롭지 못한 사람이 기계적으로 외쳤던 말씀이었더라도, 하느님에게서 나온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면, 생명이 되어 자라날 수 있습니다. 행실이 좋지 않은 상인이 판매하는 보물이라고 해서, 그 보물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무지한 사람이 중얼거렸던 속담이라고 해서, 그 안의 가르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씨앗'과도 같습니다. 그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과 땅속에 심어서 가꾸는 것이 다르듯, 하느님의 말씀을 외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는 씨앗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을 보고, 그 씨앗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들고 있는 씨앗을 우리의 삶에 심어 본다면, 분명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외치는 누군가의 행실만을 판단하며, 우리에게 허락될 생명의 가능성을 짓밟기에는 씨앗에서 자라날 생명의 가치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스승과 형제


  예수님은 유일한 스승은 하느님이요, 사람들은 형제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접하는 누군가의 가르침은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하느님의 말씀 중 극히 일부분을, 우리보다 조금 빨리 알았을 뿐이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스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을 보고, 너무나도 쉽게 삶의 전적인 스승으로 삼아버릴 때가 있습니다. 

 

 어릴 적 아이들은, 자기보다 조금 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친구나 형제의 말에 과도하게 의지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신빙하는 그 아이 역시, 어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을 듣고 이야기한 것일 뿐인데도, 주변 아이들은 그 아이 자체를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해버리지요. 그 후로 그 아이가 외치는 말에는 힘이 생기고, 아이들은 그 아이의 말에 우르르 몰려다니기 시작합니다.

 

관계 속의 진실


  예수님은 인간관계에서 벌어질 혼란을 아시고, 우리에게 그 관계 속 진실을 알려주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느님 한 분뿐이시며, 우리의 참된 스승 역시 하느님 한 분뿐이시라는 진실을 말이지요. 따라서 '모세의 자리', 즉 형제들 중 첫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스스로가 남들과 급이 다른 스승이 아닌, 잠시 앞서 배운 형제일 분임을 계속해서 자각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의 뜻을 조금 빨리 이해한 형제가 동생들을 그 뜻에 맞게 챙기는 역할이 바로 '첫째'의 역할일 것입니다. 이때의 '챙김'은 '가르침'이 아닌 '섬김'의 형태로 진행되어야 하지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자신을 가르치려 할 때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만 의지하면서 자신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꼰대"라 일컬으며, 경계하고 기피하기도 하지요. 아마도 이러한 마음은, 사람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알 수는 없으며, 모든 방면에서 항상 옳은 길을 갈 수 없다는 진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위대한 지도자로 알려진 '모세'도,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임의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모세는 살아서 약속의 땅이었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우리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느님이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가르침과 사랑을 전해주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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