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묵상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미카엘의 하루 묵상 2022. 7. 2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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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새싹

듣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처럼 반복되는 자극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복음 전문을 읽으며 묵상해봅니다.

 

복음 전문

복음 전문

비유로 말씀하시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실 때,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는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표현방식에 의문을 갖으며 예수님께 묻습니다.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이에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신비가 비유를 알아듣는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고 대답하시지요.

 

 예수님의 비유는 단순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 비유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는 이에게는, 그 동화가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뿐이지요. 비유라는 표현 방법은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마치 땅 속에 심긴 씨앗 하나가, 적절한 온도와 기후, 영양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싹을 틔우는 것처럼, 언젠가 들어본 비유 하나가, 우리의 마음에 진정으로 와닿을 때가 찾아오게 되니까요.

 

 

갖추어졌을 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그 말씀이 잘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피어납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들었던 잔소리의 진짜 의미를, 부모가 되어 알아가는 것처럼,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재료가 되어, 언젠가는 그 참 뜻을 알게하는 것 같습니다.

 

  동물의 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알은 부화됩니다. 어미가 아무리 알을 많이 낳아도, 알이 부화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새끼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아무리 반복해서 듣는다고 하여도, 그 참 뜻을 아무리 풀어써서 해석하려 하여도, 그 말씀이 우리의 안에서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예수님의 비유를 깨달으며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많은 이들이 이 행복을 갈망하였지만 얻지 못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지요.

 

비유를 마음에 심다


 예수님의 비유, 즉 예수님의 말씀은 학문적으로만 해석하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려 접근한다면, 기쁨과 행복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유에는 우리가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수많은 비 유중에 자신의 마음에 밟히는 비유를 되뇌어봅니다. 그리고 그 비유의 참뜻을 언젠가 예수님이 알려주실 것이라 믿으며, 삶을 살아가 봅니다.

 

 삶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문득 이해하지 못했던 비유 하나 가 마음에 울려 퍼질 때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게 이거구나."라며 비유의 참 뜻이 마음에서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외부에서 주입되는 비유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은 삶의 기쁨이 되며, 행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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