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비유
오늘 복음 말씀 구절은 소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맛을 내겠느냐?"라는 질문에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소금에 짠맛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소금에 짠맛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닐 것입니다. 짠맛이 없는 소금은 사용할 이유도 없습니다. 복음 전문을 읽어보며, 소금의 비유에 담긴 의미를 조금 더 살펴봅니다.
복음 전문
짠맛을 잃어버리는 것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사람의 경우라면, 본래 만들어진 사람의 모습을 잃는 것이 그 짠맛을 잃어버리는 것이겠지요.
사람의 어원
"사람"이라는 우리말의 어원에서는 정말 신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단어는 '삶'의 의미를 담고 있는 "살다"에서 파생된 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에게 있어서 그 짠맛은 바로 "생명"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습니다. 사람에게 "숨", 즉 "생명"이 없으면 사람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생명과 이어지는 것
사람의 생명에는 다양한 것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기쁨", 이웃과의 "사랑", 각자의 "매력".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람이 "생기"를 띄게 만들어줍니다. 생기가 있는 사람은 진취적이고, 즐거우며,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소금의 특성
오늘 비유로 사용하신 소금의 특성에는 재밌는 사실들이 숨어있습니다. 소금은 바닷물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바닷물에 있던 불순물을 머금게 되는데, 이를 완벽하게 정제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소금이 정제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100% 순도를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소금의 순도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불에 소금을 굽는 것입니다. 이때, 소금을 얼마나 뜨거운 불에 오랫동안 넣느냐에 따라, 그 소금의 질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요.
물에서 죽고 불에서 살아난다
"물에서 죽고 불에서 살아난다." 이 얼마나 절묘한 비유입니까.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물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물에 잠기는 죽음의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하지만 이를 통해 완벽하게 정제되지는 않습니다. 소금이 그러하듯, 사람도 불을 통해 생명의 순도를 높여갑니다.
성령의 불
성령을 비유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성령의 불"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지옥불은 인간을 처단하는 파멸의 장소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스스로 정제의 길을 가지 못한 이들을 끝내 정제하기 위한 장소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최종적으로 지옥은 죽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곳일 수도 있겠네요. 물론 그 과정은 굉장히 괴로울 테지만 말이죠.
마실 물을 주는 것과 죄를 짓게 하는 것
마실 물을 주는 행위는 소금의 짠맛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듯싶습니다. 다시 말해, 생명을 전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군가를 죄짓게 하는 것은, 소금에 불순물을 더 첨가시키는 행위와 같습니다. 이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행위입니다. 소금에 불순물이 많을수록, 불에 달구어져야 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이는 그 대상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잔인한 이야기
오늘 복음에는 자신의 신체가 죄를 짓게 한다면 그것을 떼어버리라는 잔인한 말들이 등장합니다. 실제 의도는 "그렇게 해라"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일깨워주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사실 그것들이 너를 죄짓게 하는 것이 아니니 핑계 대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의 신체에 있지 않습니다.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소금의 정체성은 그 크기와 색깔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짠맛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금이 변색이 되듯,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를 잃어갑니다. 하지만 잃어가는 무언가가 짠맛은 아니여야 합니다.
잃어도 될 것과 잃어서는 안 될 것
복음의 앞부분에서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있는 것들은 사실 우리가 잃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소금의 짠맛이라고 말하는 "생명"은, 우리가 잃지 말아야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젊음과 같은 신체적 생기는 잃어가게 되지만, 마음의 생기, 영혼의 생기는 더욱 살아나야 합니다. 삶이라는 바닷물 속에서 점점 수분이 증발해가는 과정을 통해, 소금의 모습이 드러나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머금고 있던 수분과 불순물은 잃되, 짠맛은 잃지 않는 소금이 되어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죽음이 아닌 생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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